- 잡초는 낫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7 - 이광석
잡초들에게는 잡념이 없다베는 것도 베이지 않는 것도 없는물같은 삶, 어찌 잡념의 한 점 티끌인들가 닿을 수 있으리잠시 낫질을 멈추고 너에게 담배 한 대 권하면서너의 사유의 깊이를 재어 본다.네게로 네게로 빠져 들어가는 강한 유혹의 애무를 느낀다.천둥 ...2018-02-22 07:00:00
- 손의 의미 - 박서영
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그러고 보면 호미를 쥐는 손은 호미에 맞게/펜을 쥐는 손은 펜에 맞게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그건 자신의 울음에 알맞은 손을 가지려는 것/자신이 만져야 할 색을 사랑하게 ...2018-02-08 07:00:00
- 서울역 그 식당 -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2018-02-01 07:00:00
- 성산 일출 - 김연동
부채살 펼치듯이 검붉은 물 일렁인다시름 고인 허벅에도 새 피가 돌아가고,나는야 스란치마폭 등이 환한 개미 병정☞ 자연을 마음대로 부리며 만물의 영장 행세를 하던 인간이 갑자기 한 마리 미물로 추락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시계(視界)를 벗어난 영속하거나 무자비한 자연과 맞닥뜨렸을 때일 것이다. 이 시의 화...2018-01-25 07:00:00
- 수조 앞에서 - 송경동
아이 성화에 못 이겨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 열대어가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힘을 당한 것이라 한다관계라니,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이 평화롭다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 몸이 아파 학교나 직장에서 조퇴를 하거나...2018-01-18 07:00:00
- 안개 - 강희근
안개가아파트 지붕을 딛고 내려와창문을 제 어머니 젖인 양 어루만지더니땅바닥으로 흘러내리어, 마침내세상을 과일봉지처럼 싸버렸다나의 사색도나의 연민도무슨 흘러내리는 것으로 싸버릴 수 없을까무슨, 과일봉지 같은 것으로☞ 안개가 소리 소문도 없이 다가...2018-01-11 07:00:00
- 슬퍼할 수 없는 것 - 이성복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있다는 것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수없이 스치고 수없이 만나면서도 끝내 닿지 못하는 먼 산은 누구에게...2018-01-04 07:00:00
- 모나미 - 유희선
나의 모나미, 모나미딸깍 문을 열고 웃네짧고 새까만 단발머리 흰 교복을 입고편지를 쓰네꼬부랑꼬부랑 알파벳을 쓰네까맣게 베껴 쓰는 희디흰 꿈들우리들 풋풋한 사랑밤새 건너편까지 저어 빈틈없이 채우네나의 모나미, 모나미어디든 달려가네 날아가네 여기저...2017-12-28 07:00:00
- 겨울밤의 아버지 - 박구경
시장 들목에서 걸려술이 많이 늦었지만병아리 몇 마리와산 닭 두 마리를 사 든 아버지새끼들을 어리 속에 몰아넣고마당까지 내려온 보름달을 치는 것은내리치는 것은흰 눈 위에 붉게 물들이던 그것은인삼 향이 밴 뜨거운 닭국으로동생들을 깨워자다 일어난 입맛을 쌉싸래하게 하며이미 오래전 오래전부터 그랬듯이...2017-12-21 07:00:00
- 가시 - 김우태
가시가 걸렸다.나락 매상 끝내고 어두워서야술 취해 돌아오신 아버지.이것저것 떼고 나니 남은 것은커녕빈 지게 가득빚더미만 지더라며육자배기 가락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 손에무겁게 쥐어진갈치 한 꾸러미.그걸 먹고 목구멍에 가시가 걸렸다.물을 들이키고김치를 둘둘 말아 먹어도목에 걸린 가시는 도무지 내려...2017-12-14 07:00:00
- 대봉감 - 최영욱
지난 여름의 무더위가 키웠을까지리산 푸른 바람이 달았을까저리도 달고 붉게 매달려지리산 푸른 달빛이개치나루로 하동포구로 흘러드는길을 밝히는가로등이었다가악양골 인심 좋은 농부들 웃음이었다가허공을 두리번거리는까치들 밥이었다가이 가을을 내 손 안...2017-12-07 07:00:00
- 이 거리 저 거리 각거리 - 하순희 친구들과 다리 뻗고 누구 다리 걸릴까“이 거리 저 거리 각거리 진주 남강 또 남강 짝 바리 휘양건 두루메 줌치 장독간 머구밭에 물소리 동지섣달 대서리 가위바위보”밤새워 모여앉아서뭐가 그리 우스웠나☞ 동시조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전통놀이를 동시조에 접...2017-11-23 07:00:00
- 가을 청소부에게 - 강호인
지평선 맞닿은 하늘 질펀한 노을이나술 취한 바람결이 흩고 가는 노란은행잎언제나그런 서정만그대 몫이 되게 할까형체 없는 그림자야 미리 쓸지 못하지만노동의 신성함을 온몸으로 증명하는그대의 빗자루 끝에다놓고 싶은 이 시대…….사랑의 보습 꽂고 꿈밭 가는 이웃 속엔생선살에 뿌려지는 소금 같은 약속이 있듯...2017-11-16 07:00:00
- 유모차 - 김연동 붉게 물든 서편 하늘 노을이 타는 길로폐지 실은 유모차에 할머니가 끌려간다구겨진 신문지처럼휜 삶도 접어 얹고,황혼을 높이 나는 꿈꾸는 새가 되어마지막 일력까지 태우고 싶다지만,적멸에 이르는 길섶산그늘이 짙어온다☞한 편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감동(희로...기자명 기자 2017-11-09 07:00:00
- 저문 가을, 은행나무 - 옥영숙
그곳은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선방으로피붙이 하나 없고 집 없는 노후도뜻 모를 도시의 소음도화두로 삼는다틈틈이 법문 듣고 참선하는 눈빛들바람 잦으면 죽비소리 하늘을 흔들고얼마나 큰 형벌인지황등을 밝혀 든다난해한 잡념으로 뒤척이는 가지마다육신의 때를 벗는 씨알 같은 땀방울은선승(禪僧)의 깨달음일까...2017-11-02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