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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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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82) 박서영 시인이 찾은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그곳엔 까마득한 비탈이 있더라
108개의 번뇌같은 비탈이 있더라

  • 기사입력 : 2014-01-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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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다랭이논.
    가천 다랭이마을 전경 

    가천 다랭이마을 해안

    가천 다랭이마을 출렁다리
    마을 안에 있는 고인돌. ‘자라는 돌’로 불린다.

    밥 무덤





    누구랑 다녀왔어요?

    누군가 물었다. 왜 혼자 가느냐고. 심심하지 않느냐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느냐고. 누군가와 함께 가게 되면 그 사람이 마음에 쓰여 생각의 범위가 좁아지고, 가족과 함께 가게 되면 일상에 수북수북 쌓인 근심과 걱정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른다. “이것이 삶이란 말인가. 좋아. 다시 한 번 시작하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지 않는가. 일상을 잠시 떠나 생각에 잠겨보는 것. 그렇게 해서 일상으로 돌아와 곁을 살펴보게 되는 힘을 얻는다. 이것이 복잡하면서도 충만한 기분에 휩싸여 혼자 훌쩍 떠나는 이유다.

    어느 집의 담벼락 아래서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날도 있다. 어떤 날엔 햇빛이 필요하니까. 어느 나무그늘 아래서 몇 시간을 머뭇거리기도 한다. 어떤 날엔 그늘이 필요하니까. 아무도 없는 빈집에 기어들어가 멍 때리고 앉아 있는 날도 있다. 어떤 날엔 그리움과 폐허도 필요하니까. 여행지의 낯선 카페에 들어가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날도 있다. 무엇보다 커피가 필요하니까. 차 안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따라 불러도 뭐라는 사람이 없는 시간. 내가 나에게 “괜찮니?” 하고 묻고, “아니, 괜찮지 않아!”라고 대답해버리면 되는 시간. 어떤 날엔 나무 한 그루를, 어떤 날엔 빈 들판을, 어떤 날엔 또 떠나려는 당신의 얼굴을 한없이 들여다보는 것이 내 여행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그 모든 것을 몸 안에 담고 출렁거리며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로 떠났다. 바다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그리고 다랭이마을 참 오랜만이다. 다랭이논을 보고 있으니 세계 최대의 다랭이논인 중국의 티티엔이 떠올랐다. 가본 적 없지만 언젠가 사진에서 보고 기록해 놓은 곳이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랭이논의 물빛이 달라진다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비탈에 만들어진 티티엔. 나도 언젠가는 한 번 가보게 될까. 그곳을 꿈꿔 본다. 아직 외국에 나가본 적 없다. 공항은 여행과 모험의 시작인 곳이지만 비행기는 무섭다. 고소공포증이 있다. 생활은 늘 빠듯하다. 그리고 체력에도 자신이 없다. 그러니 가천다랭이논으로 웬양의 티티엔을 꿈꿀 수밖에.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을 때 이미 나는 그곳이 어디든 여행 중이다. 낭떠러지 끝에 서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구름을 올려다보며 내 언어가 그곳을 만지고 돌아오길 기도한다. 심중의 말 한마디라고 했던가. 마음을 떠나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는 말들이 부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낀 산비탈을 깎아 돌을 쌓고 한 뼘의 땅이라도 넓혀 농사를 짓는 곳이다. 지금은 시금치와 마늘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비탈의 계단식 논은 아직도 소와 쟁기로 농사일을 해야 할 정도로 가파르다. 바다를 향해 있는 곡선 모양의 아찔한 형태다. 108개의 논배미가 있다는데 정확한 건 아니다. 세어보아야 할까. 그 독특한 점이 인정되어 국가명승 제1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비탈을 뛰어내릴 듯 지어진 집들과 논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나 잠시 올려다보았다. 허공을 찌르는 겨울의 나뭇가지 끝도 슬프구나. 찌르는 나뭇가지도, 찔리고 있는 허공도 아프기는 다 마찬가질 거야. 모든 것이 그냥 떠나는 게 없다. 언젠가 나뭇가지 끝에서 입적한 잠자리들을 본 적 있다. 늦가을이었던가. 나뭇가지 끝마다 꽃잎처럼 날개를 펴고 죽어 있던 잠자리들. 세상의 모든 풍경에는 상처가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많이 사랑할수록 서로 주고받는 상처도 클 것이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에 ‘밥 무덤’을 만났다. 매년 음력 10월 보름 저녁 8시경에 제를 지낸다고 한다. 제주는 한 달 전에 마을에서 가장 정갈한 사람으로 지정하는데 집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되고, 잔칫집이나 상갓집 방문도 삼가고, 집 대문에도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이 제주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밥을 지어 한지에 싸서 돌 무덤 속에 넣어둔다. 이것은 조상신에게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음력 10월 23일 밤 12시경에는 남근바위로 가서 미륵제를 올린다. 밥무덤 동제가 남근바위 미륵제를 지내기 위한 식전행사인 것이다. 밥 무덤을 지나쳐 몇 걸음 지나면 독특한 암수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에게 빌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나. 아무튼 민망하게 생긴 바위는 암미륵, 숫미륵이라 불린다. 옛날 어느 봄날에 이 암수바위를 보러 왔을 때 노란 유채꽃들이 암수바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유채꽃밭 사이에 서있던 남근바위 사진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지금은 왠지 썰렁해 보인다.

    마을을 산책하다 보니 마당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를 들어앉힌 집이 있다. 고인돌이다. 일명 ‘자라는 돌’로 불리기도 한다. 언제부터 자라기 시작했을까. 언제까지 자랄까. 어릴 때 거인을 잃어버린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거인을 찾고, 거인이 보여주는 세상을 구경할까. 마당 한가운데 떡 버티고 누워 있는 돌이 내가 찾아 헤매는 거인인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모든 걸 들어앉힐 수 있을 것 같은 거인 말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아 빛나는 바다도 보고, 해 지는 풍경도 보고, 높은 금기의 담 안도 슬쩍 엿보고 싶다. 마음이 크고 넓은 거인 같은 사람이 그리워진다.

    쭈그리고 앉아 파랗게 돋아난 마늘을 살짝 뽑아 비볐더니 알싸하다. 코끝이 찡하다. 이 마늘처럼 비탈에 서본 적 있나. 무엇보다 뛰어내려본 적 있나. 비탈에 서서 바다를 보니 햇살이 빛난다. 바람이 맨발을 두고 갔는지 물결이 한없이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살아 있어 흔들리고 아픈 거니까 조금 더 깊이 내려가 보라고. 비탈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도리어 나를 더 비탈로 내몰려고 한다. 다랭이논 사이로 만들어진 탐방로를 따라 걷다가 해안으로 내려갔다. 출렁다리를 건너 해안으로 내려가면 속이 훤히 드러난 바다가 있다. 출렁출렁, 고소공포증이 있는 탓에 한 발 한 발 딛는 것도 불안하다. 앞에 가는 사람은 뭐가 즐거운지 다리를 흔들며 소리까지 질러댄다. 모르는 사람인데 뒤돌아보며 나에게 웃기까지 하네. 어지럽다. 맵고 알싸한 마늘 향 때문일까. 차 안에서 내가 듣는 음악을 조용히 함께 들어주는 사람을 생각한다.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가진 사람을 생각한다. 저렇게 장난치며 다가오고 떠나는 사람을 생각한다. 바다에서 한 고백들을 심해어들이 물어뜯으며 놀고 있다. 모두 농담일 뿐.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사랑은 비탈을 뛰어내리는 것일까. 비탈을 뛰어내려봤더니 또 비탈이 있더라. 108개의 번뇌처럼 있더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릴까, 말까. 고민하다 보니 해가 졌다. 비탈을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해가 졌는데도 여전히 해안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아직 결정을 못하겠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버리면 왠지 삶의 끝까지 가버린 느낌이 들 것 같아. 해안에 서서 다랭이논을 올려다보니 궁금증과 질문이 가득 적힌 책들을 쌓아놓은 모습이다. 나는 그 책에 질문 하나를 적어두고 왔다. 당신이 그곳에 가서 나의 질문에 대한 새로운 질문 하나를 기록해 두기를 바란다.

    글·사진=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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