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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마산 백치동인' 창립멤버 이광석 시인

詩의 뱃길을 열어준 마산 바다

  • 기사입력 : 2014-06-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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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석 시인이 구강 앞바다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는 바다의 존재에 깊은 외경심을 가졌는데 그에게 바다는 다정한 친구요, 한 권의 책이었으며, 꿈과 희망의 파도 자락이기도 했다./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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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내 문인들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거나 창작 모티프가 된 장소 등 사연이 있는 공간을 되돌아보는 ‘내 문학의 텃밭’을 새 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우리글(한글)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던 상황에서 조국 광복과 더불어 마산에 정착, 어머니 호롱불 밑에서 처음으로 ㄱ, ㄴ, ㄷ을 배웠고, 그해 당시 마산 회원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하루 끼니 풀칠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자 새벽 수원지 나뭇짐 해 나르기, 야학당 개구쟁이들 우리말 가르치기가 일과였다.

    그때만 해도 책방이라고는 창동거리 백영당, 학문당, 문예사, 학원사 등이 고작이었고 허름한 동네서점이 몇 군데 있었다. 교과서 외에 활자로 된 잡지 동화책을 만날 기회나 공간이 소원했다. ‘새벗’ ‘소년소계’ ‘파랑새’ 등은 우리 또래들의 단골 멘토였다. 어쩌면 이 무렵의 막연한 꿈과 이상, 동경의 촉수들이 우리에게 문학이라는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뱃길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 시절 제일 무서웠던 두려움의 존재는 첫째 바냇들 칼바람 소리, 둘째 구강(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동과 산호동 일대 바다) 갯가 파도소리, 셋째 수원지 골짝 산지기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진 끼니였다. 지금의 마산회원구 산호동 상공회의소에서 옛날 철길 건너 호주 선교사 건물 자리까지 약 1.5㎞의 허허벌판을 지날 때 그 매서운 광풍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장갑, 양말도 없이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등하굣길을 재촉했다. 구강 갯가는 썰물 때를 기다려 조개를 캐려는 인파가 약 500여 명이나 되었다. 그렇게 캔 조개로 저녁 끼니를 때웠다. 새벽 나무 한 짐 지고 산지기네 개들에게 쫓기면서 산꼭대기로 도망치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내 문학의 텃밭 역할은 역시 구강 앞바다였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하루 품삯의 뱃길은 얼마나 거세고 험한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시리도록 파란 물빛만큼이나 가슴이 아렸다. 대문 밖이 바다요, 그 바다가 놀이터였던 탓에 바다는 언제나 다정한 친구요, 한 권의 책이요, 꿈과 희망의 파도 자락이기도 했다. 게, 장어, 꼬시락 등이 기어 다니는 모습이 훤히 보일 만큼 맑고 깨끗한 바다, 달밤이면 조각조각 깨진 달빛을 물고 시퍼런 ‘시그리’(만조 때 갯가에서 반짝이던 인광)를 반짝반짝 피워내던 그 청정의 혼불은 살아있는 보석 그 자체였다. 세상의 어둠을 멈추게 하는 밤바다의 아름다운 수신호이었다.

    저 바다가 내는 소리, 생각, 그리고 계절 따라 옷을 바꾸어 입는 패션 감각 등 나는 소년 시절부터 바다의 존재에 깊은 외경심을 키웠다. 그런 느낌들을 일기장에 담으려 해도 연필을 받아줄 종이가 없었다. 국어교과서 뒷장에 적어 처음 서울의 어느 아동 잡지사에 보냈더니 한 달 뒤에 어린이 문예란에 소개되었다. 제목은 ‘바다는 내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내 문학 소년의 첫 입질이었다.

    바다와 관련된 시가 열 편이 되는 것도 이 같은 바다 사랑의 결과라고 적는다. 그래서 지금껏 가고파의 바다를 ‘한 권의 시집 같은 어머니의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 쪽에 직·간접적으로 시의 지느러미를 댄 시편들을 살펴보면 ‘바다는 날고 싶다’, ‘바다를 거닐다’, ‘환승을 기다리는 바다’, ‘가포해변’, ‘만날고개’, ‘문신미술관에서’(마산 바다는 미술관의 큐레이터입니다/ 문신을 파리로 떠나 보낸 바다는/ 다시 그를 데리러 파리까지 항해를 했습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물은 문신의 영혼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돝섬’(섬이라 부르지 말자/ 바다 한가운데 뛰어내린/ 신라의 달이라고 생각하자/ 고운 최치원이 달빛에 취해 시상을 빠뜨린 월영대), ‘월영대’, ‘바다일지’, ‘한 권의 시집을 말한다’(그의 시집 속에는 바다가 자연산으로 파닥인다/ 초등학생 때부터 백발의 바둑판을 거닐 때까지 파도 자락을 자식처럼 데리고 살았다/ 때로는 울컥울컥 막소주에 취해서/ 때로는 섬 같은 연인 같은/ 가슴 아린 종기를 키우며/ 당도한 저문 바다/ 어시장 매운 갯바람 한 점 찍어 입에 넣으니/ 입안 가득 어머니의 바다가 출렁거린다) 등은 근접거리에서 본 바다 스케치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시가 ‘바다변주곡’이다.(바다는 제 혼자 다니는 길이 있다/ 돌아갈 수 없는 낯선 길 앞에 바다는 지금 아프다/ 보아라 뭍 어디에도 네가 적실 그리움은 없다/ 각혈하듯 시의 꽃을 피우던 가포 겨울 바다도/ 조개껍데기처럼 개펄에 엎드려 있다)

    이렇듯 지금 마산 바다는 상처가 깊다. 시그리불빛 초록으로 빛나던 그 청정의 바다는 추억 속으로 가라앉고 매립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바다의 뿌리는 잘려나갔다. 그래도 마산의 시인들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의 고전적 정서를 문학의 텃밭으로 기억한다. 설사 그 그림이 떠도는 구름처럼 부질없고 쓰디쓴 메마른 입술처럼 돌이킬 수 없다 할지라도 결코 시의 항해일지를 접지 않을 것이다. 그 항해의 첫 닻이 바로 ‘마산 백치동인’의 탄생이다. 1956년 마산 시내 남녀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이 중심이 돼 만든 이 동인은 마산고에서 이제하(시), 송상옥(소설), 변재식(연극), 김병총(소설), 강위석(시), 김용복(시), 염기용(번역), 황성역(수필), 마산상고의 이광석(시), 조병무(시), 임철규(평론), 김재호(시), 그리고 마산여고의 박현령(시), 김만옥(소설), 성지여고의 추창영(시) 등이 참여, 창립문학의 밤 행사 때 지역 선배들로부터 ‘마산의 제2의 문예부흥시대를 열 꿈나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몇몇 동인이 작고했지만 생존자 모두가 한국문단에서 큰 활동을 하고 있는 주역들이다. 창립 이래 53년 만인 2009년 5월 ‘백치’ 창간호 출판기념회를 마산 3·15아트센터에서 연 것도 마산문단의 큰 경사로 기록된다.

    또한 마산문인협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산문학인협회의 창립(1960년 5월 외교구락부)은 마산 문단사에 길이 남을 경사라고 본다. 당시 마산에 거주하면서 ‘낭만파’, ‘청포도’, ‘무화과’ 등 이 지역에서 활동한 동인들과 더불어 문학강연, 시화전에도 참여했던 김춘수, 김수돈, 정진업, 이석, 김세익, 최백산이 중심이 되고 이제하 이광석, 박현령, 추창영 등 후배 문인들이 동참, 창립총회를 가진 데 이어, 콜럼비아 찻집에서의 마산문학인협회 창립기념 제1회 문학의 밤 행사는 조촐하면서도 매우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따라서 마산 바다의 정체성은 마산의 정서, 마산의 삶, 마산 문단의 어제 오늘을 잇는 연결고리라고 본다. △일제 강점기에도 구강상권 지킴이 역할을 했던 ‘자주성’ △노산의 가고파, 고향의 봄 시정을 면면히 이어온 ‘문학성’ △3·15 민권 승리의 함성을 드높인 ‘민주화’ △갯벌에 꽃피운 수출자유지역 ‘산업화’의 동력 △그리고 부마항쟁 등 역사의 고비마다 큰 물줄기를 튼 마산 바다가 아니었던가.

    전국 최초 시의 거리(1960), 전국 최초 시의 도시 선포(2010)를 포용한 마산문학의 위상과 책임의 무게를 공유하면서 고운 최치원의 문학혼이 깃든 마산 가고파의 저 푸른 바다가 마산문학의 성소임을 우리 모두 겸허이 받아들여 마산문학의 순수를 되찾는 시의 뱃길을 함께 노 저어 가기를 소망한다.

    1961년 1월 15일부터 24일까지 마산 콘티넨탈 찻집에서 열린 이광석 제2회 시화전 방명록. 이제하 시인이 그림을 그렸다.


    <이광석 약력>
    △1935년 의령 출생 △1959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겨울나무들, 겨울산행, 바다 변주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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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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