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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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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김연동 시조시인과 마산 창동 거리

창동 거리에서 문학열정 자랐고
합포만에서 문학의 꿈 영글었다

  • 기사입력 : 2014-07-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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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 위에 햇살이 쏟아진다. 모처럼 발 디딘 창동 거리는 비온 뒤끝이라 그런지 하늘이 드높다. 바로 이 거리, 이 골목길이 나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창작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현장이 아니던가. 27년 전 그때 만난 거리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잘 정리된 상가와 말끔히 단장된 골목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80년대 후반부터 ‘한국문학’, ‘현대문학’, ‘월간문학’, ‘현대시학’, ‘시조문학’, ‘경남문학’ 등에 발표한 다수 작품의 무대와 그 배경이 됐던 곳이다. 한동안 마산에 자리 잡고 나름의 작품 활동을 하며 마산의 시인으로 문단에 인식되어 온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해 왔다. 시조와의 인연은 고향인 하동에서 ‘섬진시조’ 동인으로 습작기를 가지면서부터였다. 신춘당선으로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린 뒤 얼마 되지 않아 마산여고로 발령이 났던 것이다. 그러니까 등단 후 처음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문단활동을 시작한 곳이 마산인 셈이다. 이곳에 와서 많은 문인들과 깊은 만남이 이루어졌고, 문화인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마산의 이 거리는 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다듬는 계기를 만들어준 씨줄이었고, 이우걸, 정목일, 김미윤 등 40대 초중반의 문인들과 자주 어울려 문학이야기로 안주 삼던 그 시간들은 나를 키워준 날줄이었다. 그때 문인들과 함께 찾던 카페가 있던 곳에 가보았지만 다른 이름의 간판이 말없이 걸려 있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자주 들렀던 ‘학문당’ 서점을 찾았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다.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인 오전의 창동 번화가는 한가하였다. 골목마다 정비된 간판과 단아하게 꾸며진 예술촌의 모습이 어쩐지 옛 모습보다 친근감을 덜하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새로운 단장으로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창동 환한 불빛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별이 부르는 창가 장미 핀 식탁에서// 어두운 외식을 하였다// 에이프런을 풀었다/// 아내는 지금쯤 자정을 접고 누워/ 냉장고에 닫아버린/밥알처럼 식었겠지만// 목마른 나비 한 마리// 파도 위를 날고 있다’

    창동의 밤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잔을 나누던 그 시절에 쓴 졸작 ‘외출’이다. 이 시로 하여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정형시의 내재율 구사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가끔 시간이 나면 어시장을 찾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가용이 드물었고, 주로 버스로 출퇴근하던 때라 직장동료들과 출출한 퇴근길에 맛보는 어시장의 생선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나는 시장 길가 좌판에 몇 마리 생선을 올려놓고 시린 손을 불며 호객을 하던 가난한 모습들이 눈앞을 가렸다.

    ‘공복의 눈언저리로 비린내가 출렁인다// 일원짜리 성냥개비로 태우고픈 이 피로// 혈관에 비늘이 돋은// 비명 같은 삶의 소리’

    그때의 풍경을 단수로 쓴 졸작 ‘어시장’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는 삶의 현장이 시장이다. 지금의 어시장은 너무도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오히려 비린내 출렁거리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시장을 기웃거리던 파도의 영역을 매립하여 대형 건물을 세우고 공판장과 경매장이 들어서는 등, 무수한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멀리 마창대교가 새로운 명물로 시선을 끌고 있지만, 무엇보다 바닷물이 20여 년 전보다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어 기뻤다. 그때 처음 바다 앞에 서서 쓴 ‘합포만’을 다시 읽어본다.

    ‘눈빛 푸르던 가슴 음모의 날이 섰다/ 새떼들 외울음 끝에 매운 연기만 날고/ 파도는 제방을 치며/ 검은 멍울 푸나보다// 바닷새 둥지 떠난 허전한 포구에는/ 돌아서 눈물짓던, 서둘러 외면하던/ 갯바람 서늘한 자락/ 애증의 잔을 든다// 신열 사십이도, 목이 긴 그리움을/ 별 그리는 등대 끝에 족쇄처럼 매어달면/ 갈증은 포말이 되어/ 안개 속에 쓸려간다//’

    합포만의 물빛은 창원 시민의 얼굴이다. 시민의 그리움을 날리는 바다요, 희망을 꿈꾸는 바다이다. 우리가 살려 내야 할 평형수다. 이 물이 죽으면 합포만도 시민도 다 스러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찾은 바다의 물빛은 다행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맑아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따져놓고 보면 시장이나 구청장만 책임져야 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합포만은 우리의 세월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시민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중병이 들 것이다. 신열 앓는 그리움의 푸른 물, 푸른 바다로 출렁여야 한다. 가고파의 바다를 회복하는 데 마음을 모아야겠다.

    그렇다, 합포만은 내가 선 바다이고 나를 뒤척이게 하는 정신사가 되어버렸다. 이곳에 삶의 절반을 뿌리내린 채 살아가고 있으며, 내 문학의 전부가 이 영역을 배경으로 발상되고 표현되었다. 날선 눈빛으로 시계(視界)를 확인하며 글 빛을 담금질하여 왔다. 1988년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한 ‘拓本(탁본)’이다. 내가 딛고 선 시대적 현실을 찍어내고자 했던 작품이다.

    ‘눈썹에 먹물을 발라 하늘을 문지른다/ 수천 흐름을 지켜 금이 간 가슴 위에/ 떨리는 강물 소리가/ 어둠으로 돋아난다// 가녀린 풀잎 눕힌 바람을 세워 놓고/ 꿈꾸는 신화의 눈빛, 대역(代役)의 알몸들은/ 미명 튼 갈대로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흔들리는 가늠자 끝 그 시린 나날들이/ 뒤척이며 내려앉는 구겨진 화선지에/ 찍어도 찍히지 않는// 물먹은 낙관 하나.’

    지금까지 초기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창동 거리, 어시장, 그리고 합포만을 찾아 당시 모습을 더듬어보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흐른 시간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창연(蒼然)했다.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섰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돌아 뵈는 것들이 모두가 놓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김연동 약력>

    △1948년 하동 출생 △198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문학 천료, 월간문학 등 등단 △시조집 ‘저문 날의 구도’, ‘시간의 흔적’ 등 △경남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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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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