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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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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흩어진 무덤을 한 곳에 모으면 흉할까

  • 기사입력 : 2017-03-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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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택(산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나 음택(陰宅·무덤)이 ‘명당’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은 ‘조금 부족한 점이 있는 터’라 할지라도 터의 성정에 맞도록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명당 못지않은 복록(福祿)을 누릴 수 있다.

    필자는 현장 감정을 하면서 ‘통계적인 분석’에 의한 최선의 결과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지만, 아직까지도 말로 설명을 하지 못하거나 현상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명당에 의한 발복(發福) 또한 산 자나 죽은 자가 적선적덕(積善積德)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의 사례를 더러 보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달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흉지임에도 좋은 부분만 보는 우를 범해 통곡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조선 중기 명풍수였던 남사고(1501~1571)가 선친의 유골을 묻고 다음날 가보면 흉지여서 무려 아홉 번이나 이장을 했다. 마침내 용이 구슬을 희롱하는 ‘청룡농주형(靑龍弄珠形)’의 명당을 찾아 하관을 하자 산역(山役)을 하던 일꾼 하나가 “오늘 달구소리는 제가 매기겠습니다”하고 달구소리를 매기는데 “남사고야, 남사고야, 청룡농주형으로 알았는데 소해익수형(小孩溺水形)이 웬 말인가. 어린아이 물에 빠져 담방담방하는 것 모르느냐?”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남사고가 자세히 보니 어린 아이가 정말 물에 빠져 죽는 형국의 자리임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통곡을 했다 하여 ‘구천통곡묘(九遷痛哭墓)’라 전해지며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긴 남사고는 더 이상 이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구천십장(九遷十葬·아홉 번 이장하고 열 번째 장사 지냄)’이라고도 한다.

    일반인들이 묏자리를 구할 때, 열심히 발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터’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욕심을 부리면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면서 결국에는 그저 그런 자리를 택하게 되는 것을 허다하게 보게 된다. 묏자리의 길흉 판단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무덤이 많이 모여 있는 주변을 택하거나 계곡과 떨어진 산줄기나 그 아래에 안치하면 무해지지(無害之地)의 터는 된다. 여기저기 ‘흩어진 조상무덤’을 한곳에 모아서 정리를 하는 경우, 가장 가까운 촌수의 묏자리가 길하다면 그곳으로 모으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면 화장(火葬)을 해서 평장(平葬)으로 묘역을 조성하는 것이 좋다.

    단, 평장을 할 때도 묘역과 연결된 산(鎭山·진산)은 골이 많거나 험한 바위가 있거나 계곡이 가까이 있거나 전순(氈脣·절하는 자리)이 너무 좁은 곳은 안 된다. 일전에 자손이 없는 의뢰인의 돌아가신 작은어머니 묏자리가 좋으면 흩어진 무덤들을 그곳으로 모으고 싶다 하여 현장을 간 적이 있었다. 직계존비속 간이라도 자손이 없는 무덤은 방치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묘역은 정갈했으며 곳곳에 정성을 들인 흔적을 보고 의뢰인과 그 가족의 착한 성품에 마음이 흐뭇했다.

    ‘복’은 쉽게 할 수 없는 일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하는 사람에게 간다. 하지만 무덤의 상태와는 달리 무덤 위쪽의 ‘작은 주산(현무정)’은 세찬 바람으로 인해 크고 작은 골이 많았고, 흉풍으로 인해 색이 검게 변한 날카로운 바위가 무덤을 겁박하고 있었으며 작은 돌들은 불안한 상태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에 좋은 자리가 아니라고 했다. 다른 한 곳의 윗대를 모신 자리는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없는 명당이라 해서 현장을 관찰해보니 계곡 주변에 쓴 무덤이어서 그곳 또한 이장해야만 하는 자리였다. 계곡 사이에 있는 무덤의 좌측 산과 우측 산으로 인해 바람이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지만, 물이 스며들 수 있는 자리이며 냉기가 스며드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한 밭은 매장(埋葬)을 하기에는 좁은 면적이지만 화장을 해 평장으로 쓰기에는 적당한 곳이어서 터의 기운이 좋은 곳을 지정해 주고 무덤들을 안치하라고 했다. 밭은 흙의 상태가 매우 좋았는데, ‘흙은 기의 몸’이므로 ‘지기(地氣)’가 왕성한 터였기에 상석은 대표 상석만 설치하고 흙 둔덕(활개)을 쌓아서 바람을 막게 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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