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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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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성인자녀는 문간방에 기거하라

  • 기사입력 : 2017-05-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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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 318번길 83’에 위치한 고택은 1879년(고종16)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스님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1904년 강원도 인제 내설악산의 오세암으로 출가해 1905년 백담사(百潭寺)에서 득도했으며, 1919년 3·1운동을 이끈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3장(公約三章)을 작성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했고 1944년 5월 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해 서울 망우리에 안장됐다. 선생의 ‘생가지’는 뒷산인 주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좌측 산(좌청룡)과 우측 산(우백호)은 생가지를 보호하듯 환포하면서 유정하고 유순하게 끝맺음을 했다. 생가지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인 수구(水口·생기가 드나드는 곳)는 좁아서 마을로부터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며 생가지에서 마을 입구까지의 도로 형상은 뱀이 좌우로 요동을 하며 나아가는 사행형(蛇行形)이다. 이런 형상은 지기(地氣)를 단단히 응결시켜 생가지의 기운을 북돋우게 한다. 생가의 좌향은 갑좌경향(甲坐庚向)으로 서향이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낙안읍성(사적 제302호)은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읍성들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성안에는 전통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도로의 곳곳에는 ‘돌탑’을 쌓아서 생기가 빠지는 것을 비보(裨補·흉풍과 살기를 막거나 퇴치함)했으며, 터의 좋은 기운이 설기(泄氣)되지 않도록 연못을 설치했다. 읍성 전체 모양은 장방형으로 동·서·남쪽 3곳에는 성안의 도로와 연결된 문이 있으며, 동문이 읍성 외부의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문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낙안읍성의 조선시대 지방관아 건물이던 ‘동헌’과 수령의 안채로 사용하던 건물인 ‘내아’, 왕명으로 오는 사신들과 고을을 찾아오는 기타 관리나 외빈들이 머물렀던 ‘낙안객사’는 남향이었다. 특히 동헌은 크고 밝은 기운의 길한 암석이 박혀 있는 주산의 형상으로 보아 수령이 지방행정과 송사(訟事)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동문에서 외부로 뻗어나가는 길은 직선 도로여서 이런 곳은 동문을 향해 직충살(直衝殺·직접 치는 살기)이 발생하는데, 동문을 북동쪽으로 약간 돌려 흉살(凶殺)을 피하도록 한 것은 비보의 일환으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좋든 나쁘든 간에 ‘지형이 동일한 곳’이나 ‘도로가 둘러싼 안쪽과 바깥쪽 상가와 주택’이나 ‘지기(地氣)가 좋거나 나쁜 곳’에서 길흉사가 유사하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프랙탈(fractal) 현상’은 풍수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즉 길한 곳은 항상 좋은 일들이 생기고 흉한 곳은 항상 나쁜 일들이 반복적으로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비보풍수를 통해 일부 또는 전부를 바꿀 수도 있지만, 결코 변화시킬 수 없이 흉한 일만 계속 반복해서 생기는 곳은 하루빨리 옮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얼마 전, 김해시 진영읍 모처에 아파트 감결을 한 적이 있다.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고 꼬여서 구입하기 전에 길흉을 확인해서 길하다면 계약할 것이라고 했다.

    앞 발코니가 산을 바라보는 형국으로 안산(案山·앞산)의 지맥(地脈)이 뻗어 내려와 생기를 받고 있는 터였다. 안산은 노적봉(露積峯)으로 재물이 모이는 터였으며, 안산 뒤에는 조산이 받쳐주고 있어서 흉풍과 살기를 막고 있었다. 아파트를 출입하는 도로의 형상은 사행로(蛇行路·길이 구불구불 휜 상태의 도로)여서 재물은 모이며 흉풍은 들이치지 않는 곳이었다. 거실을 포함한 모든 방의 기운은 좋지만, 안방의 일부분은 흉한 파(波)가 나오기 때문에 필히 그곳에는 장롱을 두거나 옷걸이를 설치하도록 조언했다. 고택의 경우, 솟을대문의 한쪽 또는 양쪽 옆에는 문간채가 있는데 이곳은 나그네가 머물거나 청지기를 포함한 하인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아파트도 현관문 입구의 양쪽이나 한쪽에 있는 방은 부모가 사용하는 것보다 자녀들의 방으로 사용해야 하며, 특히 성인자녀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발한 생산 활동을 하기 위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방보다는 문간방을 사용해야 한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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