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고성농요 전승 힘 쏟는 정혁상 고성농요보존회장

고성 소리, 세계로 간다네~
‘국창’ 부친 영향 어릴 때부터 소리 좋아해
고성농요 매력 이끌려 2003년 보존회 입문

  • 기사입력 : 2017-10-20 07:00:00
  •   

  • “들어내세 들어내세 에헤 에헤이/ 이종판을 들어내세/ 에와 네세 에와 네세 에헤 에헤이/ 이모자리 에와 네세”

    길게 늘어나는 목소리에는 한숨 슬픔 그리고 정이 가득하다. 고성농요의 대표적인 소리인 모찌기 긴둥지로 두레나 품앗이의 농사일을 할 때 아침 일찍 농악대들이 풍악을 울리면서 모꾼들을 깨우고 동네 사람들의 잠을 깨운다. 지난 1985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4-1호로 지정된 고성농요.

    경북 예천의 통면농요(2호) 진도 남도들노래(3호)와 함께 국내 3대 농요로 불리는 고성농요는 지난 8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제11회 샤크타로날리 국제음악페스티벌에서 우승을 했다. 세계 최대의 전통음악 행사로 올해는 역대 최대인 62개국의 소리꾼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 세계 최고의 소리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업적을 만들어낸 고성농요보존회 정혁상(70) 회장을 만나 고성농요 속으로 들어가 봤다.


    메인이미지
    정혁상 고성농요보존회장이 자신의 특기인 태평소를 연주하고 있다.

    ▲고성농요란 무엇인가.

    고성농요는 우리 민족의 농경문화에서 발생한 민초의 소리다. 구전으로 이어지다 1972년 채집 발굴된 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성농요는 가락이나 가사를 전승된 그대로 실제화했고 가락이 호쾌해 경상도권에서는 드물게 후렴구가 발달돼 있다. 고성농요는 하지 무렵부터 시작되는 농사소리가 주축을 이루며 이를 ‘등지’라고 하는데, 등지는 모내기소리의 고성 사투리다. 총 5과장으로 제1과장 모내기 소리, 제2과장 도리깨 타작 소리, 제3과장 삼 삼기 소리, 제4과장 논매기 소리, 제5과장 물레질 소리로 구성된다. 모내기부터 물레질까지 농경사회의 사계절이 모두 담겨 있다.

    등지소리는 모찌기나 모심기 또는 논매기에 부르는 소리로 경상남도의 전역, 경상북도의 남부지방, 전라북도의 동부지역에서 주로 부른다. 등지소리는 대부분의 경남지방에서는 주로 ‘정자’라 부르며 하동군에서는 ‘등가’, 사천군에서는 ‘등개’라 부르고, 고성지방에서는 ‘등지’라 부른다. 고성농요 기능보유자의 구술에 의하면 조선시대 말엽 통영으로 가던 경상감사 행렬이 고성 들판을 지나다가 모심기 작업을 하고 있던 모꾼들의 ‘등지’소리에 도취해 행렬을 중지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고 전한다. 또 고성들판에서 ‘등지’를 불렀는데 길 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행인 중의 한 사람이 그 노래에 감탄해 자기 집에 데려다 사위로 삼았다는 구술이 전해진다.

    이진식 농요 기능보유자의 구술에 의하면 해방 이전 자기 집 하녀로부터 모심기 작업을 할 때 배웠다고 하며, 해방 후 1954년 고성군에서 주최하는 ‘등지’대회에서 일등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증언들을 미뤄 볼 때 고성농요는 훌륭한 예술성을 지녔으며 오랜 기간 구술로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 고성농요 전승

    고성농요를 발굴하고 보존회를 결성해 보존 전승의 토대를 마련한 이는 고성농요 초대보유자 (고)이상수씨다. 고성농요 전수회는 1977년 8월 회원수 49명으로 출발했다. 보존회 창립 후 그해 9월 제1회 고성농요 발표공연을 가졌다. 전수회가 결성된 3개월 후인 1977년 11월 제28회 진주 개천예술제 겸 제1회 경남지사기쟁탈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고성농요를 지속적으로 연구 발전시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다. 이와 같은 성과는 1978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다.

    메인이미지

    ▲정혁상 회장의 농요 인연은.

    산청 출신으로 국창이었던 부친(정태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소리를 좋아했던 정혁상 회장은 지난 2000년 태평소를 불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소리의 무대로 발을 디뎠다.

    태평소는 농악에 있어서는 최고의 자리라고 한다. 태평소를 잘 불면 인기가 높았고, 일종의 스카우트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해 진주 성지동 풍물단을 창단한 정 회장은 ‘진주 검무’와 ‘가간 오광대’ 등 국가 무형문화재 단체에서 활동했었고, 고성 출신이 아님에도 고성농요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매력 때문에 2003년 2월 고성농요보존회에 입문하게 된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정 회장은 2015년 고성농요보존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고성농요보존회 활동은.

    고성농요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시범공연, 대한민국 국악제 초청공연, 강릉단오제, 서울놀이마당 공연 등 수많은 국내 공연행사에 참가했다. 이런 노력으로 고성농요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공연에 도전했다. 2007년 일본 히로시마현 일본국가 무형문화재 초청공연, 2009년 중국사회과학원 농민축제 초청공연, 2010년 일본 오카야마 국제민목축제 초청공연, 2013년 미국 뉴욕한인회 초청공연, 2015년 독일 마인츠시 한인회 초청공연, 2017년 태국 방콕시 지구촌 리듬축제 초청 공연 등 많은 해외공연을 가졌다.

    지난 8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샤크타로날리 국제음악페스티벌. 1997년부터 2년마다 열리며 세계 소리꾼들에게 올림픽으로 여겨지는 이 축제에서 고성농요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고성농요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리가 된 것이다.
    메인이미지
    정혁상 회장이 고성농요비 앞에서 고성농요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예전에는 모내기나 추수 행사 등 농경 작업을 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흥겨운 노래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노래 가락에는 교환창과 선후창 그리고 노동과 휴식 풍년 충효 등 농사의 고달픔은 물론 조상 숭배와 나라에 충성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지금이야 농기계 작업이 보편화되면서 더 이상 이런 정경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말이다. 정 회장은 이런 잊혀 가는 우리 소리인 고성농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사명이라 했다. 샤크타로날리 국제음악페스티벌 우승 이후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했다. 이 좋은 소리를 후손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감 때문이다. 정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람’이다. 고성농요보존회에 등록된 회원은 52명. 이 중 막내가 40대 후반이고 최고령은 80세며 대부분이 고령자라고 한다. 농촌지역이라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다들 도시로 떠나고 지역에서 함께할 젊은 전승자가 없다는 현실 앞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통문화 계승은 평생 작업이지만 고성농요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는 외래문화 범람으로 우리 민족 문화가 위기라며 고성농요는 우리 민족 삶의 소리로 국가의 보호와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자체,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통해 이수자들 처우 개선에 나서고 고성농요의 학술적 가치도 규명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현대음악을 하는 사람도 우선 그 나라 민속음악을 이해하고 알아야 그 속에서 새로운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민속음악이야말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주는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존심이자 본향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성군민 경남도민의 관심을 부탁했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고성농요를 잘 보존하고 국제화 시대에 맞도록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장르를 도입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농요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정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태평소 한 자락을 들려줬다. 고령에도 힘차게 울리는 태평소 소리. 처음 들어보는 전통악기의 소리에 몸에서는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려는 어르신들의 절규 같은 몸부림에 마음이 한층 무거워졌다.

    글·사진= 김진현 기자 sports@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진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