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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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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공주가 왕자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 진짜 이야기

(10)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마샤 그래드)

  • 기사입력 : 2018-03-04 16: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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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연말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농담 섞인 푸념을 한 적이 있다. "요즘엔 선배들이 학교에 와서 멘토다 뭐다 하면서 후배들을 이끌어 주던데 우리 땐 그런 것 하나 없었다. 우리도 그런 기회가 많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자 후배가 말했다. "선배, 기깔(?)나는 게 하나 있는데요. 해보실랍니까" 그렇게 내가 졸업한 대학교 학과 후배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책 도서관' 행사가 기획됐다. 며칠간 준비를 거쳐 지난 14일 내 이야기로 후배들에게 사기(?)를 치고 왔다. 이번 살롱에서는 그 사기 내용을 소개하려한다.

    그날 행사에서 후배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책은 판에 박힌 동화 결론인 '공주님이 백마 타고 온 왕자를 만나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클리셰를 파괴한다. 동화적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소설은 1등 왕자와 결혼한 공주의 비극과 그 극복 과정을 그리고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해 더 애정이 가는 책이다.

    공주 빅토리아는 어릴 때 다방면에서 뛰어난 가능성을 보이지만 왕실 규범에 얽매여 그 가능성을 잃고 왕실 전래동화가 알려주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행복이라고 세뇌 당한다. 세뇌 당한 행복도 행복이라, 공주는 왕자를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위기를 맞이한다. 왕자는 공주를 온실에 가두려고 하고 공주는 예쁜 인형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왕실 규범은 더욱 공주를 옥죈다.

    공주가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 자신 마음의 소리를 크면서 무시했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비키라는 공주의 제2의 자아가 등장하는데 공주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되물으며 왕실의 삶에 딴지를 건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삶과 일에 "이건 아니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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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과정에서 공주에게 갑자기 부엉이 한 마리가 나타나 말한다. "진실의 길을 찾아나선 사람은 공주님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겁내지 마세요. 공주님의 마음만은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엉이는 공주에게 억압으로 가득 찬 왕실을 떠날 것을 종용하고 진짜 원하는 것을 해보라고 용기를 준다. 결국 공주는 왕자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걷는다.

    "이건 아니다"는 마음의 소리가 자주 들리는 사람이라면 공주처럼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내킨다면 뭐든 해보는 것이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대학생이고 스펙쌓기 경쟁이 내킨다면 해보고, 노래가 좋다면 노래를 해보자. 안 해보면 자기 마음이 원했던 것인지, 사회가 나에게 원하라고 가르쳐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해보고 아니라면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한다.

    왕실을 나온 공주는 외로움, 배고픔, 두려움을 겪는다. 부엉이가 등장해 말한다. "성숙의 징표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렵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뒷마당에서도 부엌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새가 여기 있지만, 진정한 행복이란 새가 물고 오는 것도 아니고 풀이 더욱 푸르른 담장 저편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모든 것의 진실을 알게 될 때 내면 깊은 곳에서 터져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주는 다시 '동화처럼' 마음의 안식을 찾으며 책은 마무리 된다.

    이 책은 동화형식으로 개인의 성숙을 쉽게 표현했지만, 평범한 힐링 서적으로 남기 쉬운 책이라는 한계점도 있다. 하지만 지금 안개 속에 있는 대학생 후배들, 입시 경주마 생활을 끝내고 안개 속으로 뛰어들 대학 새내기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 같아 이 책을 소개했다. 책이 해주지 않은 부분은 내 생각으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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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서 누가 공주처럼 훌쩍 다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현실은 공주의 삶과 정반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실규범을 정말 열심히 노예처럼 잘 따를 것을 약속하고 왕실에 속하고 싶어한다. 이 사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우월한 길이라고 우리를 떠민다. 게다가 주변에는 부엉이 같은 조력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경쟁 상대들로 넘처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동화 속의 공주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추상적인 "그래 원하는 것을 해보자"라는 다짐으로 끝나면 안 된다. '그래 해보자'라는 생각은 마음먹기 쉬워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공주처럼 진짜 삶을 살기 위한 첫 걸음은 나만의 부엉이를 찾는 것이다. 자신을 응원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힌트를 줄 사람. 꼭 사람이 아니라도 된다. 이런 도움이 있어야 불가능에 가까운 진짜 삶 살기를 시도라도 할 수 있다.

    그럼 부엉이를 어떻게 찾느냐.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의 부엉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옆 사람의 부엉이가 된다면 그 사람도 나의 부엉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부엉이가 되는 것이 부엉이를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당신의 첫 부엉이는 누가될지 손을 뻗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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