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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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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도내 소극장 생태계 진단

‘연극 씨앗’ 소극장, 피기도 전에 고사 위기

  • 기사입력 : 2018-03-0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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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마산이 운영하던 가배소극장이 지난달 초 문을 닫았다. 소극장이 많지 않은 지역 연극계에서는 적지 않은 손실이다.

    가배소극장의 폐관 사례로 도내 소극장의 현황과 대안에 대해 짚어본다.


    ◆가배소극장, 운영난 못 견디고 폐관=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41 지하. 지난달까지만 해도 소극장이었던 이곳은 지금 텅빈 공간이다. 아직 남아 있는 ‘가배소극장’이라는 간판만이 소극장이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흔적이다.

    “직접 지었고 또 직접 부수는 게 벌써 두 번째네요.” 극단 마산의 최성봉 대표는 가배소극장을 폐관하기로 결정하면서 직접 철거작업을 했다. 최 대표와 극단 관계자가 함께 천장 조명과 전기시설, 관객석을 뜯어냈다. 개관을 준비하면서 손수 설치했던 시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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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거리길 41 지하 가배소극장이 운영난으로 폐관됐다. 극단 마산 최성봉 대표가 철거 중인 가배소극장을 바라보고 있다.



    가배소극장은 2010년 창동에 문을 열었다. 극단 마산이 1986년 마산 중앙동 구 세림상가 3층에 개관했던 첫 소극장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한 소극장이다. 첫 소극장은 개관 11년 만인 1997년 운영난으로 폐관했다. 최 대표는 소극장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첫 소극장 폐관 이후 13년 만에 어렵게 지금의 자리에 다시 공간을 마련했다. 최 대표는 “개관 당시는 창동예술촌이 들어서기 전이라 휑했지만 연극이라는 씨앗을 심어 꽃피워보자는 마음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말했다.

    가배소극장은 매년 꾸준히 연극을 올렸다. 마산지역 극단들의 작품이 대부분 가배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최 대표는 “연평균 100일 정도 공연을 올렸다. 10일 이상의 장기공연도 자주 있었고, 다른 지역 소극장과 비교해도 가동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관 후 8년이 지난 현재, 가배소극장도 첫 소극장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됐다. 폐관 사유는 역시 운영난이다. 최 대표에 따르면 가배소극장의 연간 운영비는 1200~1500만원 선이다.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포함해 매달 100여만원 수준으로 최 대표와 극단 관계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비용을 충당했다. 건물이 낡은 탓에 물이 새거나 침수 피해가 잦아 유지보수비 부담도 컸다.

    최 대표는 “폐관하기 얼마 전 비가 많이 와서 극장이 온통 침수됐다. 이런 경우가 지난 8년간 계속 있어 왔는데 이번에는 고민이 됐다. (소극장을)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도내 다른 소극장도 운영난 시달려= 도내 다른 소극장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연극은 장르 특성상 제작비는 많이 들지만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은 탓에 음악 등 다른 장르에 비해 관객은 훨씬 적다. 공연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미미한데 매달 임대료나 관리비 등 고정비용을 지출하면서 적자가 누적되고 결국 폐관 수순을 밟게 되는 구조다. 도내 연극계 관계자들이 모두 소극장 운영을 ‘제살 깎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도내에는 경남연극협회에 등록된 16개 극단 중 9개 극단이 전용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소극장은 대부분 개별 극단이 공간을 임대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비는 거의 극단 관계자들이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각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도내 소극장들의 연평균 운영비는 1000만원 선이다.

    1997년에 설립돼 20년 역사를 지닌 창원예술극단 또한 폐관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창원예술극단의 현태영 대표는 “매년 1300만원 가까이 되는 금액을 계속 채우려니 힘에 부친다”며 “올해가 아마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까지 해보고 안 되면 문을 닫을 생각인데 그간 소극장에 투입한 비용만 1억원 가까이 돼서 철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5년 창원 명서동에 도파니아트홀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는 극단 미소의 천영훈 대표는 “여기는 월세가 비교적 저렴해 그나마 버티고 있다”며 “운영 주체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사실 소극장 운영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운영난으로 인한 소극장 폐관은 전국적으로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연극의 메카로 불리는 대학로를 비롯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서울의 소극장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임대료가 폭등한 탓에 최근 몇 년 새 잇따라 폐관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세실극장은 지난 1월 초 42년 만에 문을 닫았다. 1976년 개관해 1977년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를 개최했고 70~80년대 소극장 부흥을 이끈 연극사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2013년에는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에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 1000만원이 넘는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폐관됐다. 대학로에 있는 100여개의 소극장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1996년 개관한 학전그린소극장이 2013년 폐관됐고 1990년 개관한 상상아트홀, 2000년 개관한 김동수 플레이하우스가 2016년 모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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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만 남은 극단 마산의 ‘가배소극장’ 입구.



    ◆지자체, 관련 기관 관심 필요= 운영난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자체가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도내 지자체 중 민간 소극장 운영에 예산을 지원하는 곳은 없다. 대부분이 연극과 관련된 규정이나 방안이 전무한 상황이고 관련 기관인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경우 작품(연극) 제작비용만 지원한다. 보통 200~300만원 선이지만 이는 작품 제작비로도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도내 극단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추진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으로 작품 제작에는 숨통을 틔우고 있다. 상주단체 사업은 지역 공공 공연장에 예술단체가 상주하며 작품을 제작하고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도내 9개 극단 중 6곳이 상주단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창원의 경우 상주단체마저 운영하지 않아 창원지역 소극장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황이 훨씬 열악하다.

    창원예술극단 현태영 대표는 “창원의 경우 지자체 지원도 전무한 데다 상주단체 제도도 없다. 작품을 제작하기도 무대에 올리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극단 마산 최성봉 대표는 “지난 8년간 소극장 운영하는 동안 시에 줄곧 화장실을 설치해달라고 건의했다. 소극장이 무형의 지역자산임을 강조했지만 매번 사유재산이라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타 지자체는 지역 연극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중이다. 서울시는 가장 큰 문제인 임대료 지원에 나섰다. 1975년 개관한 서울 명동의 삼일로창고극장은 2015년 운영난으로 인해 폐관했다가 서울시의 지원으로 올해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소극장으로, 세실극장과 함께 국내 연극의 양대 창작 산실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서울시는 건물주로부터 공간을 10년간 장기 임차했고 운영은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에 위탁할 예정이다. 또한 서울시는 지난해 대학로 일대 10여 곳의 소극장을 대상으로 임대료를 100% 지원하고 연중 8~22주간 자체 공연을 올리도록 하는 ‘서울형 창작극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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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관된 가배소극장의 출입문.

    울산시는 소극장과 연습장을 직영해 안정적인 연극 제작환경을 제공하는 케이스다. 울산시는 2009년부터 중구 성안동에서 ‘중앙소공연장’을 운영해왔고 지난 2016년에는 번영로로 위치를 옮겨 ‘소극장 여울’로 재개관했다. 시는 매년 임대료와 관리비용으로 연간 4500~5000만원의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연을 위한 연습공간인 아르코공연예술연습센터를 개관했다. 아르코연습센터의 경우 울산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으로 운영비용을 부담한다. 울산시는 문화지구 내에 있는 민간 소극장에 공사비용과 월세도 일부 지원하고 있다. 울산연극협회 이현철 회장은 “시에서 연극분야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에서 직영하는 공간은 작품 제작이나 공연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 지역 극단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보다 직접적으로 소극장을 지원하는 경우다. 대구시는 2016년 남구 대명동 일대를 소극장 특화거리로 지정하고 기존 소극장과 신규, 이전 소극장에 시설 비용을 지원했다. 또한 소극장 운영 활성화를 위해 개인이나 예술단체가 소극장을 이용할 경우 임대료도 지원했다.

    도내 연극인들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연극이나 소극장을 단순히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역 예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중 극단 마산 최성봉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만들었다 부쉈다 하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극장 시설을 철거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익을 많이 내고픈 마음은 없어요. 그저 안정적으로 연극을 창작하고 무대에 올릴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글·사진=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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