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100세 시대 (2) 산업역군에서 도예가로 나선 배쌍용씨

[창간기획] 100세 시대, 은퇴자에게 길을 묻다
쇠 만지던 손, 흙 만지며 ‘뜻밖의 인생 2막’

  • 기사입력 : 2018-03-19 22:00:00
  •   
  • 준비 없는 노후는 고민의 연속이다. 할 일이 없다면,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무료함에 TV를 켜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낚시, 여행, 독서 등 취미생활에 전념하기도 어렵다. 취미생활에도 돈이 들거니와 무엇보다 100세 시대 남은 인생을 뒷받침할 경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년을 부모와 자녀를 부양키 위해 몸 바쳤는데 또다시 일말의 여유도 없는 삶으로 돌아가자니 숨이 턱턱 막힌다.

    경제, 여가 등이 만족스러운 인생의 2막을 맞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조조정의 급류에 휩쓸려 20년을 넘게 다닌 직장을 관둬야 했던 배쌍용(66·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씨도 마찬가지였다. 배씨는 1970년대 산업화 시기 현대건설에 입사해 국내는 물론 중동의 산업현장을 오갔다. 1981년부터 2005년까지 24년간은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서 일했다. 하지만 수십년간 일한 배씨의 은퇴는 갑작스러웠다. 2000년대 초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두산이 민영화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결과였다. 배씨는 그렇게 ‘명예퇴직’을 피하지 못했다.

    배씨는 “명퇴하고 중소기업으로 가서 그간 해온 일이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했던 공정을 가진 중소기업은 없어 재취업도 하지 못했다”며 “그만두면서 주식이다 뭐다 받았지만, 그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아침에 눈 뜨면 갈 데가 없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메인이미지
    30여 년간 산업현장을 누비던 배쌍용씨가 창원시 의창구 북면 화천리 판매점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전강용 기자/


    그랬던 배씨는 지금 도예가가 됐다. 퇴직한 다음 해인 2006년 김해 진례에 위치한 ‘토광도예’의 1대 계승자가 됐다. 토광도예는 전통 생활 자기는 물론 항아리, 다기 등 작품을 창원컨벤션센터, 대동백화점, 롯데백화점 김해 도자기 축제 등에 출품하는 지역에서는 유명한 도자기 공방이다. 배씨는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5회 경상남도 공예축제에도 참여해 여러 도자기 작품과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뜻밖의 인생 전환이었다. 중동에서 중장비 차량 정비를 했고, 한국중공업에서는 용접된 보일러 파이프에 물을 넣어 누수 여부를 확인하는 수압테스트를 했던 배씨와 도예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씨 인생에 도예를 연결한 접점은 아버지였다. 배씨의 아버지 고(故) 종산 배종태씨는 지난 1975년에 김해 진례에 최초로 도예원을 설립하고, 토광도예를 만든 김해 도예가의 1세대였다. 그런 아버지가 지난 2005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면서 배씨가 토광도예의 명맥을 잇게 됐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가끔 토기를 만들 정도로 도예에 관심은 있었지만, 아버지가 건강하셔서 내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그렇게 되시고, 그간 아버지가 쌓아오신 결과물을 이대로 끝내기도 아까웠다. 아버지를 따라 도예가의 길을 걷던 동생은 이미 다른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당시 나만이 퇴직해서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던 터였다.”

    하지만 배씨가 그대로 공방을 이어받기에는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에는 타인의 손을 많이 빌리기도 했다.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운영키 어려웠을 것이라고 배씨는 말한다. 앞서 아버지를 따라 도예가의 길을 걷던 동생에게 5년간을 도자기 기술을 배웠다. 아내도 거들었다. 아내는 동양화·한국화 학원을 다녔고, 지금은 도자기에 계절별 꽃을 그려넣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렇게 배씨는 토광도예의 명맥을 잇게 됐고, 김해 진례의 본점과 창원을 오가다가 지난 5년 전부터는 창원시 의창구 북면 화천리에 판매점과 새 공방을 두고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배씨의 인생 2막은 이처럼 뜻하지 않게 열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앞서 인생 1막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배씨는 말한다. 쇠를 만지던 손에 흙을 묻히자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공장 다닐 때는 거기에 매여 있는 몸이었다. 다람쥐 쳇바퀴같이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며 “그런데 많은 것이 바뀌었다. 크진 않지만 먹고살 정도는 됐고, 무엇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람도 만날 수 있고,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도 이야기할 여유가 생겼다. 공장에서는 옆사람하고 이야기 한마디하려 해도 상사 눈치를 봐야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내가 만든 자기를 찾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재미다.”

    그간 누리지 못했던 삶의 여유만이 배씨가 도예를 통해 얻은 유일한 행복은 아니었다. 손수 만든 제품과 작품을 사람들이 찾아주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상당했다. 배씨는 도예에 뛰어든 시간이 짧아, 전통 작품 도자기보다는 생활자기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컵, 그릇, 화분처럼 일상에 꼭 필요한 자기는 물론, 배씨가 구상한 명함통, 볼펜꽂이, 여러 동물 형상의 자기 등 생활밀착형 제품 제작이 배씨의 장기이다. 배씨는 “사람들이 찾는 자기도 세월이 가면서 자꾸 변한다. 예전에는 물레에 흙을 올려서 매끈하게 만든 자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손으로 주물러서 손 태가 남은 자연스러운 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런 걸 구상해서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걸 또 사람들이 찾아주더라니까 허허허”라며 수줍게 웃었다.

    메인이미지
    배쌍용씨가 창원시 의창구 북면 자신의 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배씨가 작품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항아리(진사) 제작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달항아리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작 과정이 까다로울 뿐더러 20개 정도 넣으면 1~2개 빼고는 가마 속에서 깨지거나 주저않는 등 실패율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씨가 달항아리를 제작하는 이유는 완성되기 전까진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두근거림에 있다. 다른 생활자기처럼 인위적으로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굽는 가마 속에서 불길에 의해 무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배씨는 “가마에서 나오기 전까진 어떤 무늬가 생길지 모른다. 진짜 신기할 정도로 독특한 그림이 만들어져 나온다. 사계절처럼 색깔도 다양하게 나온다”며 잔뜩 들떠서 설명했다. 이어 “장작가마에서 30시간 가까이 구워내고, 또다시 3~4일을 식혀서 꺼냈을 때 나온 작품이 진짜 마음에 드는 것이면 그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예에 뛰어든 약 10년 동안 여유, 만족감, 타인의 인정, 인간관계 등 많은 것을 얻었다고 배씨는 소회했다. 앞으로도 평생 도예가로 살아갈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배씨는 “흙을 주무르고, 물레에 돌리면서 칼로 깎고 다듬고, 가마에 굽고,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굽는 작업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무료할 틈이 없다”면서 “큰 뜻을 못 이룰지라도 내 평생 일로 도예가는 손색이 없다. 내가 자고 일어나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면 그것만큼 고역이 없는데, 내겐 다행히 공방이 있다. 이 일은 수족만 멀쩡하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도 사고로 쓰러지시지만 않았으면 90세까지도 작업을 하셨을 정도로 체력이 좋았는데, 나도 흙을 만지다 보니 예전보다 오히려 건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1층에는 도자기 체험장, 2층에는 카페를 갖춘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자기의 매력을 접하고, 서로의 인생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지금은 여건이 안 되지만, 여생 동안 준비하면 안 될 일은 없다고 배씨는 생각한다.

    은퇴 이후 그간 해왔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 평생을 해온 업이다 보니 쉽게 다른 일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씨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인생이 참 길다. 해왔던 일을 다시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변화를 주면 전혀 다른 삶이 열린다. 두렵기도 하겠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안대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