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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성봉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 주무관

“10년간 내 품에서 키운 따오기, 자연 품으로 잘 보내야죠”

  • 기사입력 : 2018-05-3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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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8년 중국에서 따오기 한 쌍을 들여온 후 꼭 10년이 지났다. 10년 만인 올해 따오기를 야생으로 방사하려던 계획은 일단 한 해 더 미뤄졌다. 지난 10년간 오직 따오기만을 담당하며 전 과정을 함께했던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 따오기복원담당 이성봉(50) 주무관은 어떤 기분일까?

    “아쉽지 않습니다. 10년간 고생했는데 허무하게 날려 보내는 것보다 좀 더 성대하게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더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고, 따오기 복원 과정에서 도움을 준 중국과 일본에서도 오는 큰 행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주무관은 “일본에서 따오기 야생방사 행사 때에는 왕세자가 참석할 정도로 성대하게 이뤄졌다”며 “우리 행사에도 중앙정부에서 참석하면 전국적인 홍보효과도 클 것이다. 행사가 연기된 것을 정치 논리로 보는 게 안타깝다. 미래를 봐야 한다. 오히려 크게 행사를 진행해야 전국적인 관심도 끌 수 있고, 따오기 복원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지원도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따오기를 4대 보물로 관리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환경성이 직접 관리한다”며 “유일하게 기초자치단체가 따오기 복원을 맡은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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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봉 따오기복원담당 주무관이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따오기 해보자”= 중국에서 들여온 따오기 한 쌍으로 시작해 10년이 지난 지금 우포 따오기복원센터에는 300여 마리의 따오기가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따오기이고 왜 하필 창녕 우포였을까?

    “시작은 2005년이었습니다. 돌아가신 김수일 교수가 우포늪도 습지인데 물새를 복원해보자고 제안했던 게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황새를 복원할까 고민했지만 다른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어서 따오기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됐다. 2006년 이 주무관은 창녕군의 일원으로 중국 양현으로 갔다. 처음으로 국내로 들여온 따오기가 바로 양현에서 왔다. 따오기가 원래 거래가 되는 동물이 아니기에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들여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창녕군의 의지와 노력이 통했는지 1쌍 먹이값 2만위안 정도를 매년 주기로 하고 기증을 약속받았다. 일본이 2005년에 중국에서 따오기를 들여올 때 60억~70억원을 줬다고 한다.

    그러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만나 실제 기증이 성사됐다.

    “들여오기는 했지만 어디에서 키워야 할지 어떻게 키울지 막막했습니다. 청와대에서 관계부처 회의를 했는데 경남도와 창녕군이 키우고, 외교부가 들여오는 과정을 맡고, 문화재청이 먹이값을 대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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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봉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 주무관.


    ◆2008년 10월 17일= “따오기를 데리고 오는 것도 힘들었죠. 배로 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생존율이 떨어지니 비행기에 태워야 하는데 규정상 조류는 사람이랑 같이 좌석에 태울 수 없다더군요. 화물칸에 태웠다간 산소 부족으로 도착 직후 죽을 수도 있고, 아시아나항공에 전세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비즈니스석에 중국 사육사 2명이 각각 따오기가 담긴 상자를 안고 중국에서 날아왔다.

    “기술도 없으니 사육사 2명을 그대로 초빙한 겁니다. 1년 반을 중국 사육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기술을 배웠고, 중국과 일본을 수시로 드나들며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지금에야 별 일이 아니지만 따오기를 키워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단 한 명도 없으니 말 다했죠.”

    창녕 현지 준비도 급박했다. 부랴부랴 민가 13가구를 이전시키고, 번식 우리를 짓고 관리동을 세우는 것도 일이었다. “일본 가서 사정사정해서 도면 구해서 설치하고 뜯어고치길 반복했습니다.”

    ◆그는 왜?= 이 주무관은 지난 1994년 공직에 발을 들였다. 공업직. 환경관련 부서에서 수질과 대기, 폐기물 등을 담당했다. 그는 “2005년부터 우포늪 관리업무를 맡다가 2006년 군수의 중국행에 동행한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도망도 못 가고 이러고 있다”며 웃었다.

    수차례 전직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주무관만큼 열정적으로 한 이도 없었고, 이제 와서 다른 이에게 맡겨서는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AI 때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꼭 설 연휴 전날에 AI가 터졌죠. 고향 갈 준비하고 있는데 따오기 담당자들은 불특정 다수를 만나 AI는 물론이고 다른 질병이라도 옮겨올까 걱정됐죠. 바로 합숙에 들어갑니다. 부모님께서는 “‘느그만 공무원 생활하나? 유난도 떤다’고 하셨지만 할 수 없었죠.”

    “따오기 키우는 게 벼슬하는 것도 아닌데 한 달 넘게 집에도 못 가고 생전 하지도 않던 밥을 해 먹어야 하니 며칠은 재밌지만 죽을 맛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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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의 따오기. 복원센터에는 현재 300여마리가 있다.


    ◆따오기 아빠= 따오기는 경계심이 많다. 그런데 이 주무관이 우리 안에 들어가면 경계를 푼다. 취재진이 양해를 얻어 우리 안에 들어가자마자 반대편으로 날아올랐는데 이 주무관이 다가가자 날개를 접는다.

    추가로 도입한 따오기에 산란을 통해 번식한 따오기가 벌써 300마리가 넘지만 10년 전 처음 들여온 양저우-룽팅 부부가 이 주무관에겐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애지중지’하는 자식들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산란을 하지 않지만 계속 돌보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한 것인데요. 혹여 이 따오기들이 죽어서 한중관계가 나빠질까 걱정도 되고 별 생각이 다 듭니다. 나 퇴직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는데….”

    위기도 많았다. 2010년이다. “따오기가 횃대에 올라가지 않으면 죽는데 며칠 동안 암컷이 죽음 직전까지 갔습니다. 집에도 못 가고 안고 살다시피 해서 2주 만에 살아났습니다. 암컷이 죽는 순간 따오기 복원도 끝나는 거죠. 돈으로 사고 싶어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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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의 따오기. 복원센터에는 현재 300여마리가 있다.


    ◆초등학생이 대학생= 이런 험난한 여정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따오기가 창녕에 왔을 때 이 주무관의 큰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됐다. 어린아이였던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다.

    “이렇게 한 가지 업무만 하는 경우가 없죠. 혜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죠. 거기에다 혹여 잘못될까 항상 긴장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10년이 지났네요. 따오기아빠라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의 부인은 공무원이다. “그러니까 이해하죠.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해주는 거죠. 만약 아내가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뭐… 안 좋았겠죠?”

    그는 지난 22일 중국에서 열린 제1회 국제 따오기 포럼에 참석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 다른 아시아 국가도 참가하는 행사다. 따오기와 관련된 일이라면 반드시 그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회를 물었다. “인근 주민들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따오기를 복원하고 야생에 방사하면 인근 농민들에게 일부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따오기가 멸종된 과정을 되짚어보면 어떨까요? 따오기가 살 수 있는 곳은 깨끗한 곳입니다. 그곳의 농작물도 당연히 깨끗하겠죠. 따오기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은 우리 사람에게도 깨끗하고 좋은 환경입니다. 우리 후손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겁니다.”

    차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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