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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점심, 후회스러운 - 정일근

  • 기사입력 : 2018-07-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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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폭염. 무더운 거리 나서기 싫어, 냉방이 잘 된 서늘한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 편안한 점심. 오래 되지 않아 3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올 단골 밥집 최씨 아주머니. 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과 국, 예닐곱 가지 반찬의 무게, 염천에 굵은 염주알 같은 땀 흘리며 오르는 고통의 계단, …… 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보다도 무겁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편과 늙은 시어머니의 치매, 아직도 공부가 끝나지 않은 어린 사남매, 단골이란 미명으로 믿고 들려준 그녀의 가족사.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한다) 서늘한 사무실에 짐승처럼 갇혀, 흰 와이셔츠 넥타이에 목 묶인 채 먹는 점심. 먹을수록 후회스러운 식욕.

    ☞ 장마가 물러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염이 몰려온다. 폭염은 에어컨 선풍기로 무장한 도심의 빌딩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뜨거운 칠첩반상을 머리에 이고 3층 계단을 올라가는‘최씨 아주머니’몸에 엉겨 붙어 ‘굵은 염주알 같은’ 땀방울을 죽죽 뽑아낸다. 에어컨 바람 서늘한 3층 사무실에서 그 밥을 앉아서 받아먹는 사람은 그녀의 핍진한 가족사까지 다 알아버린 그녀의 오랜 단골,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그녀와 눈길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만약 그곳에 ‘머리에 인 밥보다도 무겁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을 알아주고 안쓰러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도시빌딩 숲은 단순히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수록 후회스러운 식욕.’ 구절은 갈수록 냉혹해지는 현대 문명사회라는 정글에서 사람을 구하는 유력한 통로가 될 것이다.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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