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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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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3-나의 이름은 청춘] 통영 ‘삐삐책방’ 주인 박정하 씨

“하고 싶은 일 하는 ‘삐삐’가 되고 싶어 ‘삐삐책방’지기 됐죠”

  • 기사입력 : 2018-07-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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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째 책방 <삐삐책방>이 완성되고 있어요. 새로운 이름 어떤가요? 저는 제 이름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통영 게스트하우스 잊음 한편에 자리했던 책방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음을 알리는 책방 주인 박정하(27)씨의 SNS 글을 보고, 이 사람은 당연히 말괄량이겠거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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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삐삐’라는 등식이 낯설지 않은 탓이다. 기자도 지난날 적지 않게 듣던 소리였다.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로 둥지를 튼 통영시 충렬로에서 만난 그는 더없이 차분했다.

    “예전에 다른 책방에서 낭독 일을 할 때 지은 애칭이에요. 삐삐처럼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죠. 저와는 정반대되는 성격이라….”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삐삐는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하고, 관습에 저항하는 특별한 여자아이다.

    이름을 쓰다 보니 닮아가는 것인지 정하씨는 어느덧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삐삐책방의 책방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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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삐가 되고 싶어서

    처음부터 정하씨가 하고 싶은 일이 책방 운영이었던 건 아니다.

    “동화작가 공부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거든요. 어느 순간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요리사였던 부모님은 늦은 퇴근이 일상이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때마다 집 책장에 꽂혀있던 전래동화 전집을 읽으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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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지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며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동화를 공부하던 어느 날 우연히 ‘책과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전문서점을 알게 됐다.

    “책을 파는 것보다 독서 관련 프로그램이 주력인 곳이었어요. 마침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를 구한다고 하더라구요. 재밌어 보여서 시작했다 직원이 됐죠.”

    그때부터 정하씨는 책 읽어주는 ‘삐삐쌤’이 됐다. 주말에는 3세에서 7세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평일에는 유치원생들을 만났다.

    무려 4년이었다. 재밌더라도 일은 일이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많이 지쳐 있었다.

    “삐삐처럼 살고 싶어서 삐삐쌤이라고 애칭을 지었는데, 일에 치여 내 안의 삐삐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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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정하씨는 그 길로 서점을 그만두고 스웨덴으로 떠났다. 삐삐의 본고장이었다.

    “책과 아이들에 있을 때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라는 책을 쓴 유은실 동화작가님이 작가와의 만남 강연을 하러 오셨는데 스웨덴과 린드그렌 얘기를 들려주시더라구요. 너무 가고 싶어졌죠.”

    정하씨는 주로 삐삐마을(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동화를 현실처럼 구현해놓은 그곳에서 자신 안의 삐삐를 되찾아왔다.

    “먼 미래에 꿈이 책 읽어주는 할머니거든요. 아이들이 놀러오면 쿠키도 구워주고, 책도 읽어주는 그런 공간도 꿈꾸게 되고,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돌아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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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번 생각해도 원하는 건 ‘책’이었다. 책을 좋아했고, 동화구연지도사 자격증도 있는 전문 낭독선생님이었다. 그렇다고 덜컥 그런 공간을 마련하기엔 부담이었다. ‘나중에 책방이 생기면 팔고 싶은 책들을 소개한다’는 의미로 SNS에서 가상서점인 ‘미리책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책방을 열기까지 두 사람이 큰 힘이 됐다. 남자친구 이병진(33)씨, 통영 게스트하우스 잊음 매니저 장윤근(27)씨다.

    “윤근씨는 병진씨로 인해 만난 좋은 인연이에요. 돈을 모은 다음에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윤근씨가 게스트하우스에 책방을 해보는 건 어떻냐더라구요. 병진씨는 통영 ‘봄날의 책방’에서 책방지기를 했던 경력자였구요. 많이 배웠어요.”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지금 하는 게 좋다’는 친구의 근거 모를 자신감 덕분에 구체화됐다. 은행에서 1000만원을 대출받았고, 2017년 12월 3일 잊음 한편에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큰 책장 하나, 마당에 바퀴 달린 조그만 책장 하나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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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은 위로가 됩니다

    정하씨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기보다는 책을 읽는 시간,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과 경험을 전하고 싶다.

    “요즘은 주로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시잖아요. 참 안타까워요. 책방에 가면 책방지기와 이야기하면서 읽고 싶은 책이나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거든요. 또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 같은 경우엔 출판사에서 매대를 사서 운영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좋은 책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의 책방에는 그림책, 소설, 과학책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 있다. 각기 달라 보이는 책들이지만 공통 키워드는 ‘문학’이다.

    “주로 문학을 담은 책들을 소개를 하려고 해요. 요즘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서 책을 잘 안 읽잖아요. 특히 문학을 안 읽으시더라구요.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보통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죠. 근데 문학은 어떨 땐 비현실적이라서 어느 날 내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싶어 위로가 되기도 한답니다.”

    정하씨는 교육받아 이미 알고 있던 것에 대한 틀을 깨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런 책을 접할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다.

    새 보금자리를 찾은 것도, 책을 파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낭독회, 심야책방, 작가 초청 강연 등을 여는 것도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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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시 명정동 삐삐책방 내부. 오픈을 앞두고 정리가 한창이다./성승건 기자/


    ●‘살아있다는 건 정말 멋져’

    지역서점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에서 정하씨에게 살아남을 방법을 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란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낭독이잖아요. 낭독을 더 열심히 해보려고요.”

    정하씨는 오는 9월부터 통영 원평초등학교에서 학년별 책 읽어주기 강연을 하게 됐다. 그의 낭독회에 참여했던 이들 중 해당 학교 선생님이 계셨는데 정하씨를 학교에 추천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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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초 꿈이었던 동화작가의 꿈도 놓은 적 없다.

    “책방을 운영하면서도 습작은 하고 있답니다. 제 먼 미래의 꿈인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요. 읽어줄 책 중에 제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긴 인터뷰가 끝날 때쯤 조용하고 수줍던 책방 주인은 어디 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삐삐가 남았다.

    “삐삐가 말했어요. ‘살아있다는 건 정말 멋져’라고요.”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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