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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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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한 서민 정치인을 떠나 보내며- 김태희(다산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8-08-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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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서민들에게 친근하고 호감을 주었던 대중적 정치인이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그의 언어는 우리 정치 수준을 높였다. 한창 활약이 기대되던 그가 갑자기 떠나버렸다.

    그는 최근 문제된 드루킹이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으로부터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바로 부인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속일 수 없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7월 23일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 남긴 3통의 유서 가운데 정의당에 보낸 유서는 공개되었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4000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그가 책임지는 방식은 너무 극단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말과 행위에 신뢰를 잃었다는 절망적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의 빈소에는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다. 유명인들도 일반인과 함께 긴 줄을 한참 기다려야 조문을 할 수 있었다. 조문객은 노동자뿐 아니라 정치인, 연예인 등 다양했다. 27일 국회장 영결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그가 못 가진 자, 억압받는 자 편에 서야 한다고 했던 정의로운 사람이었고, 시대를 선구한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 명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다”고 애석해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이북 함경남도 출신이다. 그는 부산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시절에 첼로를 배워 공연도 했으며, 영화광이었다. 그는 서울의 경기고를 다니면서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과에 입학했다. 그는 80년 광주항쟁에 자극을 받고 노동자가 되어 노동운동을 했다. 그러나 90년대 초 동구권 몰락이라는 변화를 보며, 진보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 정치인이었다. 양당 구도에서 버티기 힘든 군소 정당의 정치인이었다. 많은 곤란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서고 성취했다. 제17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19대는 서울 노원구(병)에서, 20대는 창원 성산에서 각각 당선되었다. 어느덧 베테랑 국회의원이 되어 활약하던 참이었다.

    그가 서민적 정치인으로서 주목받고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의 언어였다. “삼겹살 불판을 오래 쓰면 바꿔야 한다”는 말은 낡은 정치판을 확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쉽게 공감을 일으켰다. 그의 언어는 비유를 잘 활용하고 유머가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정치가의 막말이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과 대조되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해 총리를 질책하자, 당시 총리가 “그렇게 속단할 일 아닙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노 의원은 “속단(速斷)이 아니라 뒤늦게 저도 깨달았어요. 지단(遲斷)이에요”라고 되받았다. ‘빠를 속’ 대신 ‘늦을 지(遲)’를 넣어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늦은 판단이라고 한 것이다. 순발력 있는 언어 감각을 보여준 사례다.

    30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12.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창당 이래 가장 높은 지지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죽음을 계기로 우리의 정치제도를 돌아봐야 한다. 정치자금법, 선거구 제도 등에서 신인이나 원외의 정치인, 군소 정당의 정치인에게 과도한 불리함을 완화해 주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구조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그를 볼 수 없다. 단지 유튜브를 통해 그의 모습과 발언을 찾아 볼 뿐이다. 다시 보아도 그의 발언은 통쾌하고 유쾌하다. 유명을 달리한 한 정치인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면서, 평소에 좋은 정치인을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정치인에게는 적은 후원금이라도 십시일반 보태야 하지 않을까. 삼가 그의 명복을 빕니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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