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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고인돌- 배원진(창원문화원장)

  • 기사입력 : 2018-09-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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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인 상남동의 고인돌 사거리에는 다양한 가게가 밀집되어 있고, 연일 수많은 인파들이 밤낮으로 몰려드는 장소다.

    그런데 거리의 이름이 심상치가 않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이곳에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라니.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인데 왜 이렇게 이름 지었나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는 역사교육과 각종 매체를 통해 고인돌이 청동기시대 무덤이고 커다란 바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고인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는데 이는 청동기시대와 21세기 사이에는 300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원지역에는 총 31개소 68기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수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창원공단 조성과 도시 개발로 사라져 버린 고인돌이 훨씬 많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고인돌도 있고, 때로는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지켜낸 고인돌도 있다.



    상남동의 고인돌은 이 중 창원 시민의 노력으로 지켜낸 고인돌에 속한다. 상남동 고인돌의 정식 명칭은 시도기념물 제224호 ‘창원 상남지석묘(昌原 上南支石墓)’다.

    고인돌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지석묘(支石墓)인데, 큰 집채만 한 바위를 떠받드는 받침돌, 곧 지석(支石)이 있는 무덤이라는 뜻이다. 현재 상남동 고인돌은 사거리의 북쪽 유적공원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주변의 택지는 모두 분양된 상태여서인지 고인돌은 발굴 이후에 원래 자리 바로 옆인 현재의 장소로 이전 복원되었다.

    욕심 같아서는 용지공원에도 유실된 고인돌을 옮겨 놓았으면 학생들에게 교육적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청동기시대는 아주 멀고 먼 옛날 이야기 같지만, 과거의 문화유산이 현재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3000년 전의 고인돌이 상남동 고인돌사거리에서 우리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배원진 (창원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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