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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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전북 군산 (2)

곳곳에 일제의 흔적… 아픈 역사 품은 도시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 ‘동국사’
입구엔 돌기둥만 덩그러니

  • 기사입력 : 2018-09-2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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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유로운 하루의 시작. 11시가 넘어 낯선 침대에서 일어난다. 청소를 시작한 사장님만 있는 게스트하우스 안. 뭉그적거리며 나갈 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일찍 일어나 모든 장소를 둘러보는 편이었다. 색다른 장소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오기도 했다. 폭설이 멈추고 시린 하늘이 열린다든지, 태풍이 오는데 배가 출항을 한다든지, 조용한 사찰에서 일출을 맞이한다든지.

    그러나 최근에는 적당히 다닌다. 빡빡한 일정을 만들지도 무리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냥 편하게, 기분 좋게, 재밌게 다니려고 노력한다. 이번 여행도 그 연장선이다. 물론 최악의 폭염이라 더 그렇다. 그런 의미로 숙소에서 책이나 읽을까? 잠이나 더 잘까? 매력적인 유혹이 떠오르지만 챙겨온 카메라를 위해서라도 나가자. 문 너머로 뜨겁고 무거운 공기가 밀려든다. 오늘도 태양은 위용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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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내린 여미랑 외관.



    ◆동국사= 걸어서 십 분 거리의 동국사로 향한다. 동국사는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로 국내에 흔치 않은 건물로 일본식 사찰 건축의 특성이 잘 드러나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토요일이지만 거리에 사람이 없다. 햇빛을 피해 그늘에 녹아내린 고양이만 보인다. 응달과 표지판을 따라 걷자 작은 골목이 나왔다. 이 길엔 카페, 게스트하우스, 전시공간 등이 모여 있다. 동국사로 모인 관광객을 위해 하나둘 생기다 이젠 거리를 이뤘다. 작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역을 담은 순간들, 현재의 시선으로 기록된 건물들, 비어 버린 집과 무너져 내린 벽, 깨진 창문들이 높낮이로 걸려 있다.

    사진전을 지나 동국사 담장이 나온다. 완만한 오르막길 주변은 다채로운 색들로 흐드러져 있다. 정면에 서 있는 돌기둥 2개가 동국사의 입구다. 단조롭고 소박한 문이다. 보통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사찰과 달리 담장 높이의 돌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다. 일반 주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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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로 들어서자 사찰 전체가 보인다. 우측에는 대웅전이 보이고 정면엔 평화의 소녀상, 참회비, 범종각이 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려면 오른쪽 요사채를 통해야만 했는데 이젠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바뀌었다. 전시하던 서류와 문화재들도 별도의 공간으로 이전해 그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내부가 깔끔히 정리되어 보기 좋다. 대웅전과 요사채를 이어주는 이 복도가 일본사찰의 특징이라고 한다.

    한 번 와 봤을 뿐인데 나름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3년 만에 보는 동국사는 곳곳이 낯설다. 그때가 한겨울이고 지금은 불볕더위의 절정이라는 차이를 넘어설 만큼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평화의 소녀상이 생겼다. 일제의 잔재가 남은 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굳건하며 슬프다. 그래서 뜻깊다. 소녀상 뒤편엔 일본불교종단이 세운 일제강점기의 만행을 참회하는 비석이 있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훌륭한 교사이고, 기록이 아닌가. 전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것들과 어우러진 이 공간이 더 나아가 정의로운 역사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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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대웅전.



    ◆절의 시간 담은 왕대숲= 앞의 공간을 지나 절 뒤편으로 걸어가자 왕대숲이 나왔다. 대나무 숲은 세월이 흘러도 푸르고 푸르다. 옅은 바람에 풍경이 흔들리고 대나무 잎은 춤춘다. 낯선 사람을 반기며 강아지도 꼬리를 흔든다. 시간이 멈춘 고즈넉한 사찰에 나만 서 있는 듯 고요하다. 평안도 잠시, 찰나가 다시 흐르고 몰려왔다. 옆 다원으로 피신한다. 내부엔 에어컨의 자비로움이 가득하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멍하니 절의 시간을 담는다. 풍경과 대숲, 사람들의 소란스러움과 도도하게 등장한 고양이. 갑자기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내려와 풀숲에 몸을 누인다. 사람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더위를 피해 자리한 녀석을 빤히 보다 카메라를 들었다. 눈치를 챈 건지 사각으로 숨는다. 따라가 잠이 든 녀석을 렌즈에 담았다. 찰칵. 투박한 카메라 셔터 소리에 영롱한 눈동자가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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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율동 성당.

    ◆둔율동 성당= 다음 목적지는 둔율동 성당이다. 택시를 타고 5분여를 달리자 도착했다. 작은 언덕 위 아담한 성당이 보인다. 둔율동 성당은 군산지역에서 최초로 건립된 천주교 본당으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목조 건물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로 신축됐다.

    하얀 건물 위에 자리한 십자가는 종교, 믿음의 유무와 관계없이 아름답다. 더위도 잊고 물 만난 강아지처럼 성당 주위를 뛴다. 처음 온 곳이라 더 셔터 소리가 울린다. 짙은 하늘의 캔버스는 어떤 사물을 올려도 아름다운 결과물이 된다. 청아한 성당이 들어간다면 더욱.

    ◆평균 이상의 중국음식= 성당을 본 만족감에 들떠 있다가 갑자기 기운이 빠진다. 오늘 하루 먹은 거라곤 커피 한 잔이 전부다. 더위로 배를 채운다면 며칠은 먹을 양이다. 현실은 쓰러질 상황. 늦은 아침+점심+저녁을 먹자. 주변 중국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오늘의 첫 식사. 고소한 기름 냄새와 차가운 바람이 분다. 드디어 탕수육이 등장. 세트로 나오는 양이 아니다. 바삭한 고기와 새콤달콤함이 입안을 채운다. 간짜장도 곱빼기로 시켰는데 친숙한 맛, 다 아는 그 맛이다. 그래서 더 반갑고 맛있는. 군산의 중국집은 어디를 가도 평균 이상을 한다. 더위도 식히고 배도 채운 만족스러운 저녁이다. 거리로 나오니 위용 넘치던 해가 살짝 물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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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 아래 일본식 가옥 카페 '소설여행'.


    ◆일본식 가옥 ‘여미랑’= 히로스 가옥을 지나 월명터널 쪽으로 걷는다. 주택이 밀집된 골목을 지나, 달빛이 내리는 목조건물 ‘여미랑(구 고우당)’에 도착했다. 여미랑은 군산시가 2012년 일본식 가옥을 복원해 월명동에 조성한 시대형 숙박체험관이다. ‘여미랑’( (잊을 여), 未(아닐 미), 廊(사랑채 랑))은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하룻밤 묵으면서 만든 추억도 함께 잊지 말자는 의미이다.

    여미랑에서 발걸음을 옮겨 곳곳에 켜진 조명을 지나 카페 '소설여행' 정원으로 들어선다. 벽면엔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카페 소설여행과 주점 취중여행이 교차한다고 쓰여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무 골조가 보이고 좌측엔 큰 화목난로가 있다. 조용히 한잔 마시고 갈 생각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 연합 파티가 열리고 있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타인과 만나는 시간. 화기애애하면서 데면데면한 분위기.

    구석 자리에 앉아 추천한 자소엽 소주와 안주 몇 가지를 곁들였다. 연보랏빛의 청량하고 상큼한 음료다. 소주의 쓴맛을 싫어해서 마시지 않는데 이건 맛있다. 직원분들과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군산의 상황을 뉴스로만 접하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색다르다. 마감 시간까지 앉아 폐를 끼치다 정리를 돕고 나왔다. 적당히 오른 취기로 걷는 거리엔 달빛만 있다. 11시를 조금 지나 하루가 끝나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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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훈
    △ 1991년 창원 출생
    △ 창원대 세무학과 졸업
    △ 산책·음악·사진을 좋아하는 취업 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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