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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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미국 시애틀

국경 너머 설렘과 마주하다

  • 기사입력 : 2018-10-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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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애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그 안에 꼭 들어가는 곳 중 한 곳이다. 사실은 시애틀에 살았던 적이 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그 잔상만이 남아 지금껏 스스로 만들어 내는 오래된 필름 사진을 넘기는 것 같은 흐릿한 그림으로 떠오르는 아주 어린 시절을 자랐던 시애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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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시애틀에서 국경을 넘으며 바라본 하늘.



    오늘 난 시애틀에 대한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때는 미 서부에서 볼 일을 다 보고 나서 시간이 남았던 시애틀에 있을 때(여행만이 목적이 아닌 미국행이었다), 문득 든 생각은 이렇게 27개국(그 이후 32개국에서 여행이 멈춘 상태다)의 나라를 다녔고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에 있는 이 도시, 시애틀을 이렇게나 많이 왔다갔다했는데 난 어째서 단 한 번도 캐나다를 넘어가 본 적이 없었던 걸까 하는 간단한 생각. 미 국경을 넘어 캐나다를 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들었다. 또한 당시의 나에겐 국경을 넘는 일이 어려울 리도 없었던 시절이다. 국경을 비행기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넘었던 경험들이 있었다. 유럽 여행을 간단하게 갈 때, 런던에서 기차로 국경을 넘어 다니기도 했고, 배를 타고 국경을 넘어간 일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자동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 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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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빌리러 갔다. 자동차 렌트 회사에 연락해 남아 있는 가장 저렴한 차를 예약했고, 회사에 들어서 차를 찾으려 하니 예약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발을 구르는 ‘척’을 했다. 사실 내 여행은 어떤 일정이 있든 빡빡하게 잡는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난 대부분의 여행을 두 발로 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어떤 비상상황에도 대처할 만한 시간적 여유 정도는 당일 여행 계획에 여유시간으로 할당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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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 풍경. 키 큰 나무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여행에서 척 하는 기술은 생각보다 어디든 유용하게 쓰인다. 렌트 회사에서는 내게 기존에 주문했던 경차(가장 저렴한 차)를 배차하지 못하니 남아있는 차 한 대를 빌려준다 했다. 물론 가격은 그대로였지만. 그래서 내가 받은 차는 결국 고급 대형차였다. 아마도 미국 전역에서 내가 렌트했던 차 중에서 유일하게 블루투스 기능이 있었던 것 같다. 하늘은 맑았고 의도치 않게 좋은 차를 싼 가격에 빌려 운전을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운전은 일단 한국과 운전대 방향이 같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런던이나 일본, 뉴질랜드는 운전대가 우리로 치면 조수석에 있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 조수석에서 핸들을 꺾는 일은 그 핸들링이나 이질감을 떠나서 교통 시스템의 방향도 반대라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는)

    수월한 운전에 생각보다도 금방 캐나다 국경지역에 도착했고 거기엔 국경을 알리는 톨게이트(?)가 있었고 거기서 검사를 하는 것 때문에 차가 조금 막히는 것 외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시애틀에서 며칠 조금 쉬는 동안 용모도 단정히 정리를 해서 그런지 국경통과 입국심사대도 별일 없이 넘어갔다.(내 경우에는 이런 수월한 심사 통과는 드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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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산호세 지역의 미국 국기가 걸린 길.


    심적으로 거대해 보이는 국경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 앞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블루투스 생각이 났고, 여행 내내 이어폰으로 듣던 노래 목록을 자동차에 연결에 듣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복습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시험문제들을 몸으로 쳐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어쩌면 국경을 넘는 일도, 캐나다도 큰 기대가 없는 채로 생각할 필요 없이 답할 수 있는 문답이라 예상하며 기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짜증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막혀 있던 차들은 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는지 드디어 국경을 넘어오자마자 펼쳐진 길고 넓은 캐나다령의 도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하늘을 봤다.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만 보통, 여행은 자유와 함께 부여받는 상장 내지는 해방 같은 기분 탓이겠지만 대부분의 외국하늘은 낮고 맑았고 당시 27개국을 다니며 보았던 아름다운 하늘 구름에 조금 익숙해져 있었던 건지, 혹은 몇 번씩이나 와 본 북미 대륙의 하늘이라 감흥 없이 다녀서 그런지, 별로 기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내 첫 배낭여행이 아름다움 하늘과 구름의 나라 뉴질랜드였던 탓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또한 어쩌면 긴 여행에, 그 두꺼운 시험지에 반복되는 문제들이 쉬워져서 지쳐 있었을까, 분명 여행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나를 빛나게 했었지만, 이는 오랜 걸음이었고, 각자 다른 매력의 각 여행지들이었지만 좀처럼 찾아오지 못하는 절정. 앞서 시애틀에서 캐나다까지 찾아 온 과정이 아무렇지 않게 내 여행리듬에 엇박을 잠깐의 기교 정도로 여기고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 정도의 반 프로 여행가 정도가 되어서였을까. 좀처럼 여행지의 매력을 떠나 크나큰 설렘을 마주 하지 못했던 시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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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가을 풍경.



    캐나다의 국경을 넘어서서 보는 풍경 속 차 안에서 끝이 났다. 하늘도, 구름도 달랐다. 음악으로 가득차 있는 공기도 달랐다. 캐나다 국경을 넘어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다시 처음 보는 하늘을 만났다. 고개와 시선을 조금 들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다시 설레는 시간. 그때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의 하늘이 지금도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하늘인 이유이다.

    생에 첫 배낭여행지의 하늘 탓에 그동안 어디에서도 온전히 공감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하늘을 캐나다 국경을 넘어와 조금 달렸던 그 도로 위에서 다시 만났다. 절정이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던 절정의 시간을 그 차 안에서 리듬과 함께 느끼고 있었다. 행복했다. 이정도면 갈 만큼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행은 지금 여기서 끝나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삶이 여행이라 믿는 내게 내 삶도 여기서 끝난다면 나는 짧았지만 내 생은 충분히 행복했다는 절정상태가 될 것 같았다. 내 시체는 부검하는 동안에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주책이지만 웃으며 행복한 눈물을 흘리면서 핸들을 제대로 잡지 않고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행복했다. 어떻게 글로 여기에 쓴다 해도,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

    캐나다 여행기를 쓸 수도 있고 무엇을 하고 보고 자고,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를 말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은 시애틀 이야기도 아니고 캐나다 이야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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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맑은 하늘.



    시애틀을 넘어 국경을 지나 캐나다 시내로 넘어가던 그 시간. 내게 캐나다는 국경을 넘어오며 바라봤던 찬란했던 하늘이다.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새로운 설렘이었다. 없을 것 같은 하늘을 다시 보게 됐고 오지 않을 것 같은 절정의 시간을 그곳에서 맞이했다. 어쩌면 그 전에 이미 나는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한참을 지루했던 여행을 끝낼 수도 있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 국경을 차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없었다면 말이다. 캐나다를 여행한 후에도 내 여행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그때의 절정을 찾으려 벼르고 있다. 어디서 다시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내 절정의 절정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캐나다 국경을 넘으면서 경험했다. 그렇게 여행은 다시 시작됐고 지금도 나는 다음에 또 찾아올 그날의 벅찬 감정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여행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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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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