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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가야문화 (4) 일본 속 가야 유물

철기·말투구·토기 부장품… 日 고대유물에 가야가 있다

  • 기사입력 : 2018-10-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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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인들은 고대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그 결과 많은 유물과 유적을 남겼다. 특히 5세기 전후, 터전을 잃은 가야인들은 일본 열도로 이주해 일본이 고대국가로 탄생하는 데 인적, 물적 기초를 제공했다. 이러한 흔적들은 일본 곳곳서 찾을 수 있다. 가야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신을 기리기 위해 신사를 만들었는데, 카라, 아라, 아야, 가야 등 가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신사들이 많다. 또 고분과 유적에서 출토되는 부장품,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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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이쇠가 발굴된 일본 오기야쿠시 유적 부뚜막.

    ◆교역 수단 ‘덩이쇠’= 가야는 철을 기반으로 힘을 길렀다. 질 좋고 생산량이 많은 가야의 철 생산품은 중국과 왜, 백제 등 다른 나라에서 앞다퉈 수입해갔다. 가야지역의 철제 유물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물건으로 덩이쇠를 꼽을 수 있다. 덩이쇠는 철기 제작의 원재료로, 이를 가공해 각종 철기류를 제작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집게와 망치, 끌, 받침모루, 숫돌 등 농기구와 생활용품부터 갑옷 등 무기류가 있다.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쪽 끝에 이르면서 폭이 넓어지는 간단한 모양의 쇠판을 한 덩이쇠는 철이 귀하던 당시 화폐로 통용될 만한 가치가 있어 물자교역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가야지역 고분에서 출토되는 다량의 덩이쇠들은 5세기 중엽 이후 그 크기와 무게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규격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덩이쇠의 양적 증가와 규격화 현상을 근거로 대량생산과 유통을 전제로 생산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동안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덩이쇠의 출토지는 경주와 낙동강 유역의 창원·김해·부산·대구지역과 영산강 유역으로, 신라와 가야지역 두 곳이 대표적인 분포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열도에서 발견되는 덩이쇠의 형태나 두께로 볼 때 신라보다는 낙동강이나 영산강의 가야·마한지역에서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출토의 대형 덩이쇠는 두께가 0.3~0.7cm로 가야지역 덩이쇠보다 두껍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덩이쇠의 분포가 같은 김해가야·아라가야·마한·왜 등을 수요·공급관계에서 하나의 경제권이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본다.

    일본에서도 덩이쇠가 발굴된다. 쏘우자시의 오기야쿠시 유적의 집자리에서는 화살촉과 덩이쇠가 있는 고정식 부뚜막이 나왔는데, 이 덩이쇠는 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 복천동 21, 22호분에서 나온 것과 거의 똑같고, 부뚜막은 김해 부원동 유적과 진주 평거동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가야시대 부뚜막 신앙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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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오카 후네하라 고분에서 출토된 말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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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카츠아스카박물관에 전시 중인 부장품 토기 물새형 ‘하니와’.

    ◆가야에서 건너간 말(馬)= 가야에는 4세기 무렵 북방의 고구려, 선비계로부터 마구가 들어왔다. 이때부터 기마문화가 시작돼 다양한 마구들을 생산했다. 표비와 판비, 환판비와 안장, 목심등자, 갑주 등이 출토됐다. 삼국지 왜인전에 의하면 4세기 말까지 일본에는 소와 말이 없었는데 이후 가야의 기마문화가 일본에 전래된다. 일본에서 발견되는 각종 판갑옷과 말갖춤, 말투구 등 철로 만든 무기류도 가야의 흔적이다. 옥전동고분에서 발견된 말투구는 일본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철제 갑옷의 발달을 보여주는 시가현 신가이 1호 무덤 등의 부장품들을 접할 수 있다.

    특히 말투구는 임나일본부설을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한 유물이다. 일본은 오타니(大谷) 고분에서 출토된 말투구를 근거로 한반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왔다. 1986년 합천 옥전고분군 발굴현장에서 말투구(馬胄)가 발견됐는데, 그전까지 말투구는 동아시아에서 3점의 출토 사례가 보고돼 있었다. 한국에서도 부산에 1점만 출토된 상태였는데 마구류는 동북아에서 문화의 전파 경로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이므로 의미가 컸다. 당시 발굴에 참여한 박승규 전 영남문화재연구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옥전고분군의 말투구는 일본보다 시기적으로 빠르고 완성도에서도 훨씬 뛰어나다”며 “합천은 당시 가야연맹의 일원이었는데 이런 소국에서 5점이나 나왔으니 일본 고고학계의 주장은 근거를 잃어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고학적 관점에서 임나일본부설은 합천 옥전고분 말투구 발굴 이후 논란이 종식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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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발굴된 말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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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복천박물관에 전시 중인 금관가야 철기 유물.

    ◆껴묻거리 상형토기= 토기는 한반도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의 하나다. 신석기시대 이후 유적에서는 골고루 나오는데, 우리 민족이 손기술이 좋을 뿐만 아니라 생활과 뗄 수 없는 물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수량도 많다. 그러나 식기, 저장용으로 사용하던 일상생활 토기는 온전하게 남은 것이 거의 없어 대부분 조각으로 발견된다. 원형 그대로 출토되는 토기는 대부분 특별 제작한 의례용이거나 무덤에 주검과 함께 묻은 껴묻거리(부장품)이다.

    갈색 계통의 붉은색이 감도는 연질토기는 가야인들이 생활용기로 사용하던 것으로 800도 정도 아래에서 구워지므로 쉽게 깨진다. 짙은 회색의 경질토기는 주로 무덤에서 발견된다. 장례의식용으로 만든 경질토기 껴묻거리는 5세기 이후 일본 아스카문화를 대표하는 스에키 문화에 영향을 준다.

    가야는 죽은 자의 안식을 바라는 산 자의 염원을 담아 빚은 상형토기 문화를 갖고 있는데, 가야인들의 가치관과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크기는 작지만 표현력이 좋다. 가장 유명한 가야 토기는 김해 덕산리에서 출토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으로 국보 제275호로 지정됐다. 무장한 무사가 갑옷 입은 말을 타고 있는 모양으로 높이 23.2cm, 폭 14.7cm이다. 나팔 모양의 굽다리접시 위에 네모 판에 서 있는 무사와 말을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두 개의 뿔 모양은 내부가 비어 있어 술이나 물을 담을 수 있는데, 실생활에 쓰인다기보다는 의례품으로 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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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대동면 덕산리에서 출토된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국보 제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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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지역 유적에서 발굴된 압형토기.

    가야인들은 다양한 형태를 토기로 만들었다. 배와 오리, 신발, 집, 수레바퀴, 말, 짚신, 새, 뿔, 등잔 등이 있는데 ‘도기 배 모양 명기 (보물 제555호)’와 ‘도기 신발 모양 명기(보물 제556호)’ 등이 대표적이다. 가야에는 압형토기와 마형토기가 많이 발견되는데 압형토기는 물과 관련이 깊은 오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물을 다스리는 신의 대리자로 인식된다. 이와 더불어 하늘을 날면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거나 죽은 자의 영혼을 승선시키는 역할을 하는 새로 각인된다. 마형토기의 말 또한 봉황, 기린 등과 함께 사자를 말이나 기린이 사자를 태워 우화등선시키는 동물로 인식되므로, 가야고분 출토 마형토기는 이 같은 의미에서 부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학계에서는 압형토기와 마형토기는 가야인들이 상장제의에 신선사상을 반영한 도교적 상장제구로 사용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껴묻거리 상형토기인 ‘하니와(埴輪)’에서 가야인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고훈시대(‘고훈’은 한자어 고분(古墳)의 일본어 발음) 대표적인 유물인 하니와는 대형 봉분 주위에 열 지어 놓았던 장식품이다. 매장 의례 때 공양물을 담는 항아리와 그릇받침에서 기원했다. 초기엔 제물을 넣은 항아리 형태였다가 원통형으로, 후기엔 사람과 집, 사슴·돼지·말 모양 등의 다양한 형태로 갈라진다. 지배자 무덤을 사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후계자의 권위를 보증하고, 산 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상적 제례터로 중시했던 고대 일본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오사카부립 치카츠아스카박물관에 들어서면 다양한 하니와를 복원해 놓은 장식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모리모토 토오루 부관장은 “하니와를 자세히 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운송수단인 새(오리)는 죽은 자를 보다 평안히 하늘로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배와 수레바퀴, 신발 등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운송수단을 토기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고 설명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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