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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노동의 즐거움- 서영훈(사회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18-11-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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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훈 사회부장·부국장


    10여 년 전, 창원을 떠나 단신으로 서울에서 1년가량 생활한 적이 있다. 아침 출근시간이 대략 7시였는데, 그러다보니 한겨울에 숙소를 나설 때에는 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숙소 인근에서 버스에 올라탄 뒤 한강을 건너기까지만 해도, 나의 출근시간이 다른 이들에 비해 꽤 빠르다고 여겼다. 그러나 버스가 한강 다리 위를 달릴 때면, 착각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그 시간, 한강의 북쪽과 남쪽에 길게 뻗어 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는 전조등을 밝힌 차량들로 이미 빼곡하다.

    퇴근 무렵 시청이나 그 주변의 지하철역에 가보면, 역시 서울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은 굳어진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환승로를 따라 걸을 때면 주변 사람들이 내는 발자국 소리의 박자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창원에 이웃한 부산의 지하철역 발자국 소리도 창원의 출근길 발자국 소리에 비해 조금 빠른 편이지만, 서울의 그것은 부산의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물론 부산에도, 창원에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 보면 한국사람 대부분이 이처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지구상에서 조금 산다고 하는 나라들로 이뤄진 경제협력개발기구 즉 OECD 국가 중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해 2024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였다. OECD 평균 1759시간에 비해 265시간 길고, 가장 짧은 독일에 비해서는 668시간이나 길다.

    연장근로 한도를 12시간으로 줄여 1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주 52시간은 산업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연장근로 가능 시간이 줄어 소득이 감소했다거나 인력 충원이 안 된 상태에서 연장근로를 제한하다 보니 노동강도가 세졌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주 52시간이 산업현장에 착근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 또 일과 생활의 균형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에 공감한다면, 52시간 시행에 따른 문제점은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된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당시 유럽에서는 하루 15시간 이상의 노동이,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60~70년대 한국에서도 하루 12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이 이뤄졌다. 지난 1973년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가 마산수출자유지역 즉 지금의 마산자유무역지역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신은 작업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가’라는 물음에 35.6%가 ‘죽지 못해 일한다’라고, 33.1%가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라고 했다.

    인간은 왜 노동을 하는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자기 계발과 함께 일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것 아닌가.

    노동시간 단축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았다. 습관적으로 이뤄지는 장시간의 연장근로가 노동생산성을 낮은 수준에 머물게 한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간 1356시간에 불과한 독일의 노동생산성은 1780시간인 미국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서영훈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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