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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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고려인의 친구 황원선 ‘구소련친구들’ 총무

고려인이 부르면 달려가는 남자 "우리, 친구 아이가"
우즈베크서 사업할 때 받은 ‘고려인 사랑’ 못잊어
2014년 한국 돌아온 후 고려인 지원 시작했어요

  • 기사입력 : 2018-11-0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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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 동포란 단어는 세계화 시대에 어찌 보면 구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타지에서 만난 이 구식의 단어가 주는 안도감은 클 수밖에 없다.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시기에 농업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했던 고려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 연해주에 살다가 당시 소련 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르메니아 등 중앙아시아 지역의 허허벌판으로 쫓겨나야 했던 우리 동포들. 과거 자신들의 의지 또는 그와는 별개의 이유로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자녀, 손자, 증손자 등 2·3·4세대가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국내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국이지만 이제는 낯선 곳이 돼 버린 한국에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려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재한 외국국적동포 고려인연합회 구소련친구들’(이하 구소련친구들)의 황원선(52) 총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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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원선씨가 김해 부원동 ‘구소련친구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지난 5일 김해시 부원동에 위치한 구소련친구들 사무실에서 황 총무를 만났다. 이날 그는 수시로 국내 체류 고려인들로부터 오는 전화에 응대하느라 쉴 틈 없이 바빴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도중에도 사무실을 찾는 고려인들로 종종 자리를 떴다. 이날 사무실은 전날 새벽 3시께 입국한 우즈베키스탄 가족, 김해지역에서 카페를 개업하고자 상담하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국적 고려인 3세대 커플과 아무런 연고도 없이 변사한 고려인 3세대의 장례를 도와 달라는 고려인 등으로 북적거렸다.

    고려인들이 황 총무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특별한 일이 아니다. 거주지 마련이나 취업, 병원 진료 등 외국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그런 일이다. 하지만 한국말이 서툰 또는 전혀 하지 못하는 고려인들에겐 버겁기만 한 일들이다. 방을 구하는데 어떤 방이 좋은지, 방세가 비싼데 조금 깎아줄 수 없느냐 하고 묻고 싶어도 이런 사소한 말조차 하기 어려운 게 고려인들이다. 전기세를 내야 하는데 돈을 입금할 줄을 모르거나, 집주인에게 냉장고가 고장났으니 수리를 요청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약국이나 병원을 찾아도 어디가 언제부터 아팠는지 설명할 길은 요원하고, 취업을 하려고 해도 이력서 한 장 자신의 손으로 작성하기 어렵다. 이처럼 생활 속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황 총무는 중간에서 고려인들의 말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다시 전달해주는 등 사소하지만 상당히 버거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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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씨가 고려인들 상담을 하고 있다.

    특히 위급한 상황에서 황 총무는 고려인들에게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한다. 지난달 20일 김해시 서상동의 4층짜리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A(4)군과 A군의 누나 B(14)양, 그리고 크게 다친 형 D(12)군과 이종사촌형 E(12)군의 부모에게 그러했다. 당일 A군의 엄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불이 났는데, 아이 4명이 없어졌다. 찾아달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긴급한 상황임을 인지한 황 총무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관들에게 자녀들의 위치를 수소문했고, 두 부모와 함께 아이들이 옮겨졌다는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황 총무는 “현장에서 엄마가 제 옷자락을 붙들고 아이를 찾아달라고 절박하게 애원했다. 경찰을 통해 A군이 있는 병원을 찾았는데, 이미 사망한 모습을 보고 한동안 말없이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착찹한 심정이었다”며 “엄마의 직장을 소개해주고, 남편의 임금체불 문제를 도와준 것이 인연이 돼 둘을 알게 됐다. 주변의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부부가 거처할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함께 동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소련친구들은 내달 1일 김해시 봉황동의 김해YMCA 회관에서 YMCA와 김해생명나눔재단, 지역 종교단체와 함께 ‘김해 서상동 원룸 화재 피해자를 돕는 모임’ 이름으로 피해자를 돕기 위한 기금 마련 바자회를 준비하고 있다. 한 홈쇼핑 회사로부터 이미 800점의 새 옷을 지원받아 놓았다. 화재 당시 황 총무는 1100명 정도 되는 구소련친구들 회원들이 대화를 주고 받는 채팅앱에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부모 명의의 계좌를 공개했고, 이들 가족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려인들도 자발적으로 성금을 보내고 있다고 황 총무는 설명했다. 이날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와중에 사무실을 찾은 피해 가족의 아버지는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며 황 총무에게 도움을 줘 고맙다며 두 손을 꼬옥 잡고 포옹했다.

    황 총무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사무실에 들렀던 아들이 ‘월급도 안 받고 도대체 이러한 활동을 왜 하느냐’고 묻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몰랐다”며 “무엇을 바라고 하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큰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돕는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도와줘야 될 고려인들이 점차 늘게 됐다. 하루에 370여 통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 살던 황 총무는 ‘구소련친구들’을 결성한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움 요청이 와 결국 가까운 김해로 이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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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씨가 고려인들 상담을 하고 있다.

    황 총무는 고려인도 아니고, 고려인 2·3·4세대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같은 동포라는 마음만으로 고려인들을 돕는 이유에는 자신도 똑같은 도움을 고려인들에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수기, 자동차 부품, 카메라 등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12년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낸 적이 있다. 당시 현지의 고려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그가 특히 기억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한 달 정도 몸살을 앓을 때 이웃에 있던 고려인들이 약도 사주고, 김치도 가져다주고, 병원에도 데려다주며 자신을 간호해줬던 기억이다. 그들은 황 총무에게 한국말을 배우면서 ‘꼬레스, 미 꼬레스’, 즉 ‘한국인, 우리는 한국인이다’이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아픈 그를 도왔다.

    황 총무는 “‘우리는 한국인이다. 가족이다. 동포다. 한민족이다’라면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던 저를 다독여주고, 밥까지 차려주었던 고마운 기억이 있다”며 “이후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알았던 변호사를 국내에서 만났고, 그를 통해 고려인들을 돕는 첫길이 시작됐다. 취업 자리를 알아봐달라는 거였다. 이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려인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고, 뜻이 맞는 고려인들과 함께 구소련친구들이란 단체를 2015년 2월에 창설하게 됐다”고 했다.

    황 총무는 별도의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받지 않고 구소련친구들을 운영하고 있다. 구소련친구들에 가입한 고려인들이 내는 회비로는 사무실에 있는 통역사 2명과 활동가 1명의 임금을 내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황 총무는 자신이 운영하는 작은 노래방의 수익금을 대부분 단체 사무실의 운영 경비로 지출하고 있다.

    그는 “외국인등록증 발급을 돕는 데서부터 국내에 정착하려는 고려인들은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주기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고려인지원센터를 세워 전문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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