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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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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사회적 약자와 저상버스- 박진호(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18-11-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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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부터 필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하게 되었다. 자가용 이용에 익숙해져 있다가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그간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사뭇 새롭게 다가왔다. 길거리 풍경, 버스 안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살펴보다 보면 금세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착하곤 한다.

    그러나 버스를 타며 얻는 소소한 재미에도 한 가지 괴로운 것은 버스 계단에 채 올라서기도 전에 출발해 버리는 버스이다. 버스를 처음 이용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버스 출발 전 계단에 올라선다. 교통카드 찍는다. 자리를 빨리 잡는다’가 하나의 임무처럼 여겨졌다. 교통카드가 없어 현금을 내야 할 때는 그야말로 낭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버스를 이용하는 걸 보면 절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버스의 승차감이 좋지 못한 것은 거친 운전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전국에서 운행되고 있는 버스의 대부분은 계단이 있어 차체가 높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고 유모차나 휠체어는 승차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이다. 본래 저상버스는 필요 시 출입문에서 경사판이 내려올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로 여겨진다. 그리고 일반버스처럼 운전기사가 승객을 내려다보는 구조가 아니라 기사와 승객이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더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편리한 교통환경을 제공하고자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있지만, 버스의 출입구와 정류장의 높이 차이가 크고 버스에 탑재된 경사판이 전혀 이용되지 않아 온전히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실제 교통약자들의 저상버스 이용률은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저상버스는 세계 2차 대전 이전부터 유럽 여기저기서 조금씩 개발되었고,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모델은 1976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시장에 선보였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의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대부분이 저상버스로 운영되고 있다. 필자가 독일 유학 중이던 90년대에도 이미 저상버스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고 나면 차체가 정류장 쪽으로 기울어지는 기능으로 승객들이 편안하게 승차할 수 있도록 하고, 유모차와 자전거, 노인들의 휠체어가 자유롭게 탑승했다. 무엇보다 휠체어가 탑승하면 출입문에서 경사판이 내려오고 버스 기사가 차에서 뛰어나와 휠체어를 밀어주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우리나라는 2002년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 때 저상버스가 처음 도입되었다. 대회 이후 저상버스 도입사업을 통해 서울, 인천, 대구, 부산, 광주 5개 지자체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재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국 평균 23% 정도로, 2021년까지 보급 목표율인 42%를 달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저상버스의 가격이 일반버스에 비해 매우 높은 반면, 태울 수 있는 승객의 수는 한정적이라는 단점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때문에 버스운송업체가 공기업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지자체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미세먼지로 인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중교통 이용을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니, 필자가 환경정책을 연구하면서 ‘자가용 이용 자제, 대중교통 이용 촉진’을 이야기했던 것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법적으로 1·2급 장애인 200명당 제공되는 콜택시는 단 1대라고 한다. 혼잡한 시간에는 3~4시간 대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대중교통 이용을 강요만 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시설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어 가고 우리 모두 피할 수 없이 늙어간다. 한없이 높은 버스 계단을 바라보며 한숨만 짓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진호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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