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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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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은퇴 후 인생 나침반이 가리킨 건 ‘가르치는 삶’ 송종욱씨

공무원 퇴직 후 문해교사로 인생 2막

  • 기사입력 : 2018-12-0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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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마냥 주저앉을 것 같았는데, 저는 다시 도전에 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의 삶은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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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은 ‘신선한 인생지도’에서 생애주기 4단계론을 펼쳤다. 제1기 인생은 출생에서 공식교육 종료까지, 제2기 인생은 취업하여 퇴직까지, 제3기 인생은 퇴직하여 건강하게 지내는 시기, 제4기 인생은 건강악화로 타인에게 의존해 지내는 시기로 구분했다. 인생 3기는 퇴직 후 원하던 삶을 영위하고 개인적 성취, 자아 실현을 이루는 시기다. 인생 3기를 맞아 노인 문해교육에 온몸을 바치고 있는 송종욱(61) 고성 거류초등학교 해오름반 교사. 그의 제2의 삶으로 들어가 본다.

    ▲제2의 삶을 준비하다= 송씨는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전까지 40년 동안 고성군청 공무원으로 재직했다. 공정하고 일 잘하는 공무원으로 불리던 그는 공룡을 고성군 브랜드로 육성한 일, 고성농공고를 항공고등학교로 전환한 일, 생명환경농업 시행 등이 40여년간 공직생활에 자신과 함께한 일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2012년부터 교육복지과장으로 근무하며 고성군의 평생교육 기반을 닦은 것이라고 했다. 고성군이 문맹퇴치를 위해 힘을 쓰고 있는 고성학당은 그가 기초한 것이다. 현재 고성학당은 14개 읍면에 48개소 49개반이 있으며, 5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27명의 문해교육사가 주2회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방문해 수업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치매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글을 가르치자, 평생 교육이 이러한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송 과장은 군 자체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해 문해교육사와 실버놀이지도사를 선발해 집중 양성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이 지역 노인 교육복지 프로그램의 한 축이 되었다. 특히 2013년부터 문해교육을 군민 평생교육 차원에서 시행했는데, 짧은 기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고성군에서 가장 많은 문해 학습자들이 한글을 익히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평생교육 발전 방안을 고민하고 체험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무언가가 머리를 스쳤다고 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교사가 되고 싶어 했던 꿈. 공직생활로 잊고 살았던 그 꿈을 퇴직 후에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퇴직 후의 인생을 준비하게 됐다.

    “꿈이기에 별다른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그는 교육과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 위해 우선 국가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에 등록했다. 사회복지학과 한국어학을 전공해 2개의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한국어 교원 2급과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초등학교과정 문해교육 교원 이수증, 문해교육사 3급, (사)국제웃음치료협회의 실버 체조지도자 1급, 웃음치료사 1급, 레크리에이션지도자 1급, 노인심리상담사 1급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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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 어머니 같은 나의 제자들= 송씨가 문해교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2010년 작고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평소 어머니의 소원은 글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저 세상에 가기 전에 선생님한테 한글을 배워 편지도 써 보고 책도 읽고 싶다던 어머니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글을 몰라 평생 반쪽 인생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한을 풀어 드리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라는 생각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현재 어르신 제자 19명을 상대로 문해교육을 하고 있다.

    고성지역 여러 학교에서 손사래를 쳤지만, 거류초등학교 홍성표 교장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2016년 12월 초등학력 인정과정 설치 허가를 받았다. 문해교육 학습자 평균 연령이 78세로 고령이고 시력과 청각도 좋지 않아 수업 진행에 어려운 점도 많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초등학생 못지않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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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욱씨가 할머니 전용 배움터인 거류초등학교 해오름반에서 태극기 관련 수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수업을 하고 있는 송씨.
    ▲수업은 나의 즐거움= 지난 3일 거류초등학교 3층에 마련된 할머니들의 전용 배움터인 해오름반 교실. 교실에는 19명의 할머니들이 태극기를 그리고 있었다.

    “태극기의 중요성을 아셨죠. 칠판에 있는 태극기를 그대로 그려보세요. 태극 문양과 건곤감리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면서 그리세요.” 색연필을 들고 색칠하는 할머니들 틈으로 송 선생님은 급하게 돌아다녔다. 교실 뒤편에는 할머니들의 작품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시가 한 편 있었다. 이갑연 할머니가 쓴 ‘거류산 연가’였다.

    ‘홀로 거류산을 오른다/내 등 뒤로 너를 업고 오른다/구만인들 다 업지 못하랴/ 단풍은 스무 살 피처럼 뜨거운데/(중략)너를 오르니 오도독 무릎이 꺾인다/내 생애 구구절절 그리운 꽃이여/그 꽃 아직 지지 않았다/내 배움의 눈물 아직 멈추지 않았다’

    “저리 놀랍도록 가슴 저리는 시상을 가진 분이 글을 몰라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이 분의 글을 보고 너무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참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공직 후배인 고성군청 모 과장의 모친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삶도 봉사로= “문해교사는 ‘잘 가르치는 것보다 문해 학습자들의 배우고자 하는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는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그는 “작은 욕심이 있다면 중학교 과정을 개설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과정은 3년이다. 연간 240시간씩 3년을 배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들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제 더 못 배우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도교육청에서 인정도 해 줘야 하고 예산도 줘야 하니까요. 이번 기사가 중학과정 개설이나 초등과정 인정 학교가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순간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시간 수당으로 받는데 한 달에 100만원이 못 된다고 한다. 그래도 돈보다 중요한 봉사를 하고 있어 자신은 부자라고 말한다.

    그는 대가면 연지리에 있는 ‘(사)동시동화나무의 숲’을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또 다른 꿈도 가지고 있다.

    “전국의 아동청소년들이 고성으로 몰려와 숲과 어울리면서 동시와 동화를 읽고 쓰며 문학의 꿈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꿈입니다.”

    글·사진= 김진현 기자 sport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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