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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영상·문자 결합된 ‘디카시’ 개척자 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문자 쓰던 시인, 스마트폰 쓰며 새로운 시 쓰다

  • 기사입력 : 2019-01-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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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카시는 자연이나 신이 주는 시의 선물입니다.”

    새로운 시 장르인 디카시를 개척한 이상옥(62) 시인을 지난 22일 디카시 발원지인 고성에서 만났다. 그는 “디카시는 언어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해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예술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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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가 고성군 마암면 자신의 집에 마련한 한국디카시연구소 별관에서 휴대폰으로 디카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디카시는 기존 문자시의 상상력과는 다르다. 영상과 문자의 멀티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두 개의 입을 통해 한목소리로 말한다. 종이책으로 인쇄해 소통도 가능하고 온라인으로도 소통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디카시의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해 그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해 SNS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디카시의 매력이다.

    “디카시의 경우 시적 감흥이 찾아올 때 그것은 시의 온몸으로 찾아옵니다. 일반 문자시에서는 착상에 불과한 것이지요. 문자시는 그것을 오랜 시간 갈무리해 시인의 상상력으로 확대 재생산해 시를 완결시키는 것입니다. 디카시는 순간 속에 영원을 담아내는 양식이에요.”

    그는 디카시와 문자시의 다른 점에 대해 “디카시는 99%의 영감과 시인의 1% 상상력으로 쓴다면 문자시는 1%의 영감과 99% 시인의 상상력으로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성 장산마을에서 태어난 이상옥 대표는 시인이다.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2016년 2월까지 창신대 교수를 지내다 명예퇴직을 하고 그해 3월 중국 정주경공업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중국과 고성을 오가며 디카시연구소 일을 했다. 이후 2018년 9월부터 대학강단을 완전히 떠나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만 일하고 있다. 지난해는 한국디카시연구소를 대표해 제2회 황순원 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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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2004년부터 디카시 공론화= “2004년도는 스마트폰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디지털카메라 보급형이 나와서 누구나 찍고 쓸 수 있는 소통 환경이 도래했습니다. 문예창작과 시론교수로서 뉴미디어 시대에 시는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디카시라는 개인 실험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대표는 디카시라는 신조어로 당시 인터넷 한국문학도서관 연재 코너에 2004년 4월부터 6월까지 50편을 연재하고 2004년 9월에 최초의 디카시집 ‘고성 가도(固城 街道)’를 출간하며 디카시를 공론화했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 하나로 걸어다니는 1인 미디어시대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디카시는 영상과 문자가 한 덩어리로 된 시로 실시간 SNS로 소통하는 것 이상으로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메인이미지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가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디카시 초창기 때 비난도 들어= 디카시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기존 시단에서 쉽게 수용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언어 하면 문자언어라고만 생각하니까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표현하는 디카시는 기존의 언어예술이라는 관점에서는 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사진작가들이 볼 때도 못마땅할 수 있다. 디카시는 영상과 문자의 멀티 언어로 표현되는데, 디카시 초창기에는 사진도 모르면서 디카시를 쓰면 되느냐 따위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등재된 다카시의 정의는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해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장르로, 언어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해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예술이다’로 되어 있다.

    이 대표는 “SNS 환경에서는 찍고 쓰기의 영상과 문자, 즉 멀티 언어 글쓰기가 일상화됐다”며 “이런 글 쓰기를 시적인 예술 글쓰기로 끌어 올린 것이 디카시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문예운동으로 부흥= 이 대표는 경희대 김종회 교수, 계간 ‘디카시’ 최광임 주간, 천용희 편집장, 한국디카시연구소 이기영 기획위원 등 문인들과 함께 디카시 문예운동을 해왔다. 그리고 다음 카페 ‘디카시 마니아’를 개설해 인터넷 공간에서도 디카시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논쟁도 많이 했지만 디카시 창작과 함께 디카시론화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제일 어려웠던 건 디카시를 포토포엠과 오해하는 것입니다. 포토포엠은 기존의 완성된 문자시에 어울리는 사진을 엮어 각각 독립성을 지니는 완성된 것이지만, 디카시의 영상과 문자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져야 시가 되는 것이죠. 이걸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합니다.”

    이 대표는 이젠 디카시, 포토포엠, 포토에세이 이런 용어들이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이미 정확하게 구분해 등재돼 더 이상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헷갈려 한다며 미소지었다.

    그는 2004년 디카시를 공론화한 후 곧바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2006년에 디카시 전문 무크지 ‘디카詩 마니아’를 창간하고 2007년 반년간 ‘디카詩’로 정기간행물 시대를 열었다. 2014년부터는 계간 ‘디카詩’로 발전해 지난해 겨울호로 통권 28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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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옥 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

    ◆고성을 디카시 메카로= 이 대표의 고향인 고성은 디카시의 발원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8년부터 매년 고성디카시페스티벌이 열린다. 디카시가 한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소개되면서 2016년부터는 고성국제디카시페스티벌로 명칭을 변경했다. 지난해는 제11회 경남 고성국제디카시페스티벌이 열렸다.

    디카시 문예운동을 주도할 단체가 필요해 2010년에 디카시문화콘텐츠연구회를 창립하고, 2014년에는 고성문화원 디카시연구소로 개편했다. 지난해에는 독립기관인 한국디카시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한국디카시연구소는 발원지 고성군의 지원을 받아 국제디카시페스티벌 기간 고성디카시공모전, 중국대학생디카시공모전을 열고, 디카시작품상도 제정해 지난해 제4회 디카시작품상을 수여했다. 한국디카시연구소는 타 지자체와 MOU도 체결하고 하동의 ‘이병주 하동 국제문학제 디카시공모전’, 경기 양평의 ‘황순원문학제 디카시공모전’, 보은의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을 주관하고 있다.

    디카시는 전국적으로 확산돼 도서관, 문학관 등에서도 디카시 강좌 붐이 일고 있다. 2018년에는 검정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와 개정판 2019년 고등학교 언어와 매체에도 디카시 작품이 수록됐다.

    해외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계간 디카시를 통해 해외의 디카시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으며, 한중인니대학생디카시교류전이 올해로 제4회째 열린다.

    또 지난해는 미국 시카코예지문학회와 MOU를 체결했으며 시카코에는 디카시연구회도 결성됐다. 지난 16일에는 중국칭다오조선족작가협회와 MOU를 체결했다. 올해부터는 한미중작가디카시교류전도 열린다.

    이 대표는 고성을 디카시의 메카로 발전시켜 교과서에서 디카시를 배우는 중고등학생들과 해외의 디카시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고 싶은 게 꿈이다.

    그는 “디카시의 발원지가 고성이고 그 토포스가 고향 장산마을이다. 조만간 장산마을에 디카시 발원지 표석도 건립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고성에 디카시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며 “그래서 고성을 태고의 공룡과 최첨단 디지털의 디카시, 즉 고대와 현대가 융합된 매혹적인 곳으로 이미지메이킹하는 등 문예부흥의 고장 피렌체처럼 이야기가 숨쉬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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