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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 남산가이(南山可移) - 남산도 가히 옮길 수 있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9-0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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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지조를 지켜야지’, ‘소신을 지켜야지’ 하다가도 정작 어떤 일에 딱 부딪히면 지조나 소신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당(唐)나라 고종(高宗)과 측천무후(則天武后) 사이에서 막내딸로 태어난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신분이었다. 측천무후가 자기를 닮았다 해 특별히 총애하였다.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려 살았으니 그 버릇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조금 자라자, 정말 안하무인이 돼 천하에 겁나는 것 없이 멋대로 하였다. 지위가 높은 대신들이라고 대항하는 사람들이 없고, 대개 알아서 다 잘해 주었다. 도리어 공주에게 잘못 보여 황제나 측천무후에게 좋지 않은 말이 들어가 관직에서 쫓겨날지, 좌천될지 눈치 보기에만 급했다.

    공주는 민간을 다니면서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고 좋은 물건을 빼앗아도 관리들은 앞장서서 합법화시켜 주었다. 황제나 측천무후에게 실상을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언젠가 공주가 옹주(雍州)에 있는 절에 갔다. 그 절간의 멧돌이 마음에 들었다. 오래 되어 반질반질하고 조각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따라온 사람들에게 궁궐로 옮겨가자고 했다.

    주지 스님이 “이 맷돌로 양식을 찧어 많은 스님들이 먹고 삽니다”라고 몇 번 사정을 했지만, 공주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화가 난 젊은 스님들이 관아에 고소를 하였다. 그러자 고을의 재판을 담당하던 사호참군(司戶參軍) 이원굉(李元紘)이 판결을 내리기를, “공주는 당장 그 맷돌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으시오”라고 했다.

    이원굉의 상관인 옹주 장사(長史)로 있던 두회정(竇懷貞)이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는 기회주의자였다. 당장 이원굉을 불러, “네 놈은 어찌 그리 멍청해? 공주님이 좋아하면 찾아서라도 주어야지. 죽으면 네 혼자 죽지, 왜 나까지 죽이려고 해? 공주님 위세를 몰라서 그래? 얼른 고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이원정은 붓을 들어 “남산은 옮길 수 있어도 이 판결은 흔들리지 않습니다.[南山可移, 判不可搖也.]”라고 썼다. 두회정이 계속 명령하고 협박해도 이원굉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달래고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었다. 남산은 당나라 서울 장안(長安) 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으로 높이가 2600m에 이르는 높은 산이다.

    굳센 지조가 흔들리지 않을 때 흔히 “남산은 옮길 수 있지만…”이라고 하며, 이 말을 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들이나 언론들의 태도가 돌변하는 것에 동정이 가기는 한다. 그러나 큰 관점에서 한 시대 정권의 비위에 맞추어서는 안 되고, 국가민족의 백년대계를 보아야 한다.

    요즈음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신임하는 사람이라고 멋대로 하는데도 공무원이나 언론에서는 그쪽 편을 들고 있다.

    * 南 : 남녘 남. * 山 : 메 산.

    * 可 : 가할 가. * 移 : 올길 이.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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