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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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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 기사입력 : 2019-0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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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 이 시를 읽고 나서 나는 대나무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바뀌었다. 꽃도 풀도 나무도 아닌 이 대나무라는 사물이 나에게 심어둔 이미지는 사시사철 푸르다는 이유로 절개를, 굽어질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직한 성품을 표방하면서 수백 년을 사랑받아 왔지만 사실은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거리는 나약한 존재이고 바람에게는 허리가 뻐개질 정도로 휘청거리면서 흉흉한 소문에 떠는 그런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줄곧 한 면만을 보고 그것이 그 존재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의 편협한 시각은 비단 이 대나무라는 사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는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다양한 존재들이 뒤섞여 살아가면서 이 세계를 떠받치고 또 이끌어 간다. 그런데 문화든, 사람이든, 삶의 방식이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피부색이 종교가 다르다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의 사람이나 단체에 의해 사회는 시끄럽고 무질서해진다. 한 면만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틀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날 테니 그 다른 면을 향해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보자.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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