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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봄은 어떻게 오는가-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19-03-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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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피는 춘삼월! 정말 좋은 계절이다. 온 대지가 생기를 뿜어내며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틀 후면 경칩이니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봄을 찬양하는 시·수필·노랫말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으며, 생동하는 대지와 호흡하기 위한 상춘객을 맞이하느라 온 강산은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산과 들이 꽃과 녹음으로 뒤덮인다고 해서 과연 봄이 온 것일까! 아프고 슬픈 봄도 많다. 몇 편의 시를 보자.

    첫째, ‘진달래꽃’(1925년)이다. ‘진달래꽃’은 김소월의 고향 평북 정주 곽산 남산리의 산에 해마다 봄이면 진달래가 활짝 핀 것에 영감을 얻어 지은 시다. 이 시가 탄생한 배경은 좀 특별하다. 소월의 외숙 장경삼은 9살에 7살의 연상의 여인과 결혼 후 국내에서 고교졸업 후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귀국해 신의주 모 고교의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첩과 새살림을 차려 뒷바라지와 고생을 많이 한 본처를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1년 만에 사망해버렸다. 남편의 비보를 들은 경삼의 부인은 옷고름을 적시며 슬피 울었다. 원망도 미움도 모르는 착한 아내,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 고와서 소월은 이 시를 지어서 위로한 것이다.

    둘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이다. 이상화 시인이 국토를 빼앗긴 식민지 치하의 민족현실을 ‘빼앗긴 들’로 비유해 표현한 대표적인 저항시다.

    셋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유명한 시구가 실려 있는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다. 이 시는 중국 4대 미인 중 한 사람인 왕소군(王昭君, 전한시대)이 흉노족 왕에게 끌려가는 가련한 처지를 빗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읊은 시다. 이 시구가 우리나라에서 회자된 것은 1980년 ‘서울의 봄’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26사건 이후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재야인사들이 복권됐다. 이듬해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와 유신헌법 개정논의를 진행하는 등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프라하의 봄’(1968년)에 빗대 ‘서울의 봄’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러나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다시 삭풍이 몰아쳤다. 고 김종필 전 총리가 현실에 빗대 ‘춘래불사춘’이라고 언급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봄을 마음껏 느끼며 희망의 기지개를 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봄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봄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사소한 것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국민들의 심기만 흩트려 놓는다. ‘국민’을 입으로 말하는 사람일수록 국민이 안중에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 작금의 경남은 ‘드루킹’ 댓글조작을 통해 민심을 호도한 죄로 김경수 도지사가 구속돼 그 후유증으로 더 혼란스럽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이 ‘가고 있는 길’과 ‘가야만 할 길’을 늘 의식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내공을 겸비한 진정한 봄 향기를 나 자신부터 뿜어내보자.

    황벽 스님(黃檗希運, 당나라)이 읊은 ‘박비향(撲鼻香)’ 게송에 이런 명구가 있다.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不是一番寒徹骨) 매화가 지극한 향기를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단지 달력이 가리키는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봄’도 의미가 부여된 시간인 ‘카이로스의 봄’과 어우러질 때 완전해지리라. 정연복 시인이 읊은 ‘봄은 어떻게 오는가’를 가슴에 새기면서 봄을 맞이해보자.

    “얼음장이 녹는다고/ 봄이 아니다./ 산에 들에 꽃 핀다고/ 봄이 아니다./ 미움과 원한의 얼음장이 녹아야 한다./ 사랑의 꽃 한 송이 피어야 한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좋은 기운이 가득해야 진짜 봄이 오는 거다.”

    이상준 (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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