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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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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바다로 연결된 삶의 터전- 김태희(다산연구소장)

  • 기사입력 : 2019-03-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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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에 사는 이강회가 우이도에 문순득을 만나러 갔다. 1818년 스승 정약용이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간 후였다. 문순득은 홍어 장사를 하러 나갔다가 표류되어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베이징을 거쳐 4년 만에 우이도에 돌아왔다. 마침 우이도에 유배 와 있던 정약전(정약용의 둘째 형)이 문순득의 표류 경험을 기록해두었다. 바로 <표해시말>이었다. 이강회는 이를 보강하고자 했다.

    이강회가 관심을 가진 것은 수레와 배였다. 문순득이 보았던 것을 묻고 기록했다. 이강회는 말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원균은 왜 패배했겠는가. 이순신의 지략이 좋아서 승리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여서 조선술을 발달시켜야 한다.”

    저 남쪽 바다에 살고 있던 일개 서생이 왜 배에 관심을 가졌던가.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스승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표류선을 잘 조사해 우리나라의 낙후된 조선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바다로부터 위험이 올 것을 예견하고 대비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자동차·조선산업을 생각해보면, 이는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자동차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 획기적으로 성장했다. 조선산업도 눈부신 성장을 했다. 1990년대에 30년간 선박수주 세계 1위인 일본과 경쟁하다가 2000년에 들어서는 세계 1위로 자리를 굳혔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이른바 빅3가 주도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자리 잡은 거제는 조선업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올해가 위기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선산업 또한 예전과 다르다.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하면서 흔들렸다. 다행히 지난해는 연간 수주량이 다시 세계 1위였다고 한다. 그러나 거제의 동요와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올해 발간된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먼저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라는 부제가 붙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 저)이다. 또 하나는 2017년 미국에서 발간되어 올해 번역된 <제인스빌 이야기-공장이 떠난 도시에서>(에이미 골드스타인 저)이다.

    미국 중북부 위스콘신 주에 있는 제인스빌은 인구 6만3000명이 사는 작은 도시다. 제너럴 모터스 (GM)가 1923년 발렌타인데이부터 쉐보레를 생산하기 시작한 곳이다. 85년 동안 GM공장은 제인스빌의 생활 리듬을 규율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의 삶은 이 공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12월 23일 마지막 자동차 타호를 생산하고 공장이 폐쇄되면서 그들의 삶은 오랜 터전을 박탈당했다.

    거제의 삶도 제인스빌의 그것과 유사하다. 온 가족이 조선소에 근무하기도 한다. 다만 우리 경제 현실이 그렇듯 거제에서도 노동의 양극화가 선명하다. 직영 정규직은 작업복을 입고 도시를 활보하는데, 하청업체 노동자는 작업복 입고 다니기를 꺼린다고 한다. 작업복이 마치 지위나 신분의 상징과 같다. 불황의 고통조차도 차별적일 것이다. 흥망을 함께하는 지역 경제공동체 내부에서 이익과 손해가 한쪽에 쏠리지 않게 서로 나누는 구조가 아쉽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서로 경쟁하지만 공생하는 구조가 안정적이라 생각한다.

    수주가 안 되면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익의 논리에 따라, 산업 사이클의 전망에 따라, 공장이 이전되거나 폐쇄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역 주민들의 삶에 너무 치명적이다. 우리 삶의 터전은 바다로 그 너머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로부터 기회가 오기도 하고, 위험이 오기도 한다. 또한 산업환경은 장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넓은 안목, 긴 안목에서 우리 삶의 터전을 가꾸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곳 주민들의 행복과 함께였으면 한다.

    김태희 (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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