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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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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내 마음에 드는 수면 부족의 얼굴들- 이한기(마산대학교 교수)

  • 기사입력 : 2019-05-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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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이 햇수로는 30여년이나 됐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을 접했다. 어림잡아서 몇천 명은 된다. 어떤 학생과는 긴 접촉 시간과 많은 대화와 토론을 가졌고, 어떤 학생과는 강의 중 시선을 주고받은 것 이외는 이렇다 할 상호작용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접한 학생들은 여러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잘난학생, 못난학생, 예쁜학생, 미운학생,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학생, 생각 없이 앉아만 있는 학생 등 내가 가르친 학생 하나하나에 이러한 레이블을 붙이자면 한이 없다. 이러한 레이블은 학기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곧잘 변하기도 한다. 못난학생이 잘난학생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생각 없이 앉아만 있던 학생이 돌연히 칼날 같은 질문으로 나에게 유쾌한 경악을 선사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나 내가 즐기는 학생의 분류에는 좀 더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지만, 그것은 내 마음에 드는 학생과 그 반대로 내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이다. 하기는 어떤 학생은 내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하기도 하여 나를 당황시킨다.

    어쨌든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내 마음에 드는 학생들의 얘기이다. 내 마음에 드는 학생 또한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도 특히 내 마음에 드는 학생은 수면 부족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주로 시험 때에 볼 수 있긴 하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예상문제를 풀고 하다 보면 훤하게 새벽이 오고 허겁지겁 책을 챙겨 학교에 오면 정신이 멍하다. 게다가 아직까지 암기하지 못한 문제들, 챕터들이 계속해서 심리적 부하를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불쾌하기만 한 압력은 아니다. 견딜 만하고, 즐겁기까지 할 것이다. 휴식은 부족하지만 기분은 흔쾌하다. 대뇌 특히 전두엽의 활동도 제법 명민한 편이고, 눈동자는 피로해 보이나 호기심과 앎의 지혜가 깊이 담겨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들, 젊음의 얼굴은 무엇보다 온화해 보인다. 비록 시험기간에 많이 보이는 단상이지만, 이런 조건 하에 처해 있는 학생들을 나는 수면 부족의 얼굴을 가졌다고 사사롭게 정의한다. 물론 새벽이 오기까지 술을 퍼마시며 놀기에 전념해 잠이 모자란다고 하는 수면부족의 얼굴도 없는 건 아니다. 실상 나는 이러한 후자들과 전자를 단번에 식별해낼 수 있다. 한 옛날에는 나도 궤도를 한참 벗어난 후자가 되어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면 부족의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이 사회를 건강하고 역동적으로 유지시켜주고 있나를 엿볼 수 있다. 시험기간이 되면 5시간 이상의 수면도 취하지 못한 그들이 커피 한잔에 의존하며 쓰고 읽고 풀고 생각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나라의 미래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매학기 유심하게 수면부족의 얼굴들을 찾아본다. 가끔 하나씩 둘씩 눈에 띄는 그런 얼굴들을 눈여겨봐 둔다. 그 청춘들은 유달리 신념과 희망과 자신감이 있는 얼굴들이다. 또 초조해하지 않고 불만스럽지도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긍정하고 감사하는 얼굴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곧 내 마음에 드는 얼굴들인 것이다. 사회에서는 “요즘 대학생들은…” 하며 학생들을 철부지로 생각하며 못 미더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것 한 가지를 얘기하자면, 그들을 가만가만 관찰해보면 내 마음에 드는 얼굴들이 엄청 늘어난 것을 본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세상의 잣대로만 학생들을 보려고만 하지 말고, 사회 변혁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 청년실업이 장난이 아니다. 수면부족의 그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첫째 덕목이 아닐까 한다. 청년에게 한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말이 겉치레는 아니지 않은가.

    이한기 (마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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