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경남시론] 아름다운 5월을 위하여- 김태희(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 기사입력 : 2019-05-08 07:00:00
  •   
  • 메인이미지


    5월. 색색의 꽃이 다퉈 피고, 녹색은 나날이 짙어간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과연 계절의 여왕이다. 그런데 무릇 밝음에도 그늘이 있다 했던가. 자살률이 높은 달이 뜻밖에도 5월이라고 한다.

    최근 국회에서 자살예방포럼이 개최됐는데, 이와 관련한 보도기사에서 인용한 2017년 자살 통계가 주목된다. 1~2월과 11~12월은 자살자 수가 900명대였다. 3월부터 1000명을 상회해 증가하다가, 5월에 1158명으로 최다수를 기록했다. 5월의 자살자 수는 1월의 923명보다 235명이 많았다. 봄철의 자살 증가는 이미 확인된 현상으로, ‘스프링 피크’라고 한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햇볕을 많이 쬐라고 권고한다. 그런데 일조량이 늘어난 봄철에 자살이 높은 것은 이러한 권고와 어긋난다. 이에 관해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는 우울증이 심해지지만 충동성도 줄어 자살로 이어지지는 않는데, 봄철에 일조량이 늘면 감정 기복이 커져서 자살이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사회심리학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진 결과로 설명하기도 한다. 희망찬 봄과는 다른 초라한 현실의 절망감이 극단적 선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한때 자살률 1위였다가 국가적 노력에 의해 자살률을 반감시킨 바 있다. ‘1987년 4월~1988년 3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1397명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자살자의 93%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등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핀란드 관련 연구가 전하는 정보다. 다른 요인도 결합됐겠지만, 자살에 이른 데는 정신적 요인이 결정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최근 주목을 받는 조현병 환자들도 봄철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피해자가 타인이냐 자신이냐의 차이가 날 뿐, 뭔가 비슷한 맥락의 계절적 원인이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지난 진주 살인방화사건은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사람들은 범행자에 분노하고 조현병 환자를 위험시하고 있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의 증상 정도가 다른 데다 증세도 때에 따라 다르다. 위험시만 할 수 없고, 격리하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중증 환자는 격리하지 않더라도 방임할 수 없다. 그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정신적 건강을 잃게 되는 원인이 다양하고 복합적이겠지만, 가정의 결함이나 붕괴가 원인일 소지가 높다. 정신적 건강을 지키려면, 먼저 내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 그런데 내 가정만 챙겨서 내 가정의 안녕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다. 한 가정의 불행은 사회적 불행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주위의 문제 있는 가정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이다.

    화려한 5월인데, 5월이면 상처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39년 전인 1980년, 이름도 짓궂게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으로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됐다. 누가 전쟁의 최전선에 투입할 공수부대를 시가지에 풀어놓았는가. 학살과 피해의 현장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목격된 엄연한 사실조차 왜곡되거나 부인되고 있다. 살아남은 희생자들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다. 동원된 병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악의적 비방과 왜곡으로 상처를 덧내는 일은 사라졌으면 한다. 또한 건강한 우리 사회를 위해,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자극하는, 혐오와 증오를 유발하고 고조시키는 언어는 삼갔으면 한다. 밝은 5월에도 그늘은 있고, 화려한 5월에도 상처는 있다. 그래도 5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름다운 5월을 모두 함께 누렸으면.

    김태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