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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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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80) 제24화 마법의 돌 80

“신고를 해도 상관이 없소”

  • 기사입력 : 2019-05-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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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덕이네는 평생 동안 이재영의 소작농을 해왔다. 그러한 사람들이 떠나니 보상을 해주어야 했다.

    “얼마나?”

    “만주까지 갈 차비요.”

    이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어야 하다니. 류순영은 오지랖이 넓은 여자였다. 차비라고 하지만 먹고살 돈을 보태주어야 했다. 전쟁이 심해지면서 경제도 악화되고 있었다. 생필품 외에는 물건도 팔리지 않았다. 이재영도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재영이 운영하는 각 지역의 상회도 점점 경영이 악화되고 있었다.

    “돌려받기는 어려울 거예요.”

    류순영이 말했다. 이재영은 할 말이 없었다. 허허롭게 웃기만 했다. 류순영은 이미 만주로 가는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보태주었다. 그러나 만주도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재영은 기왕에 만주로 갈 바에야 연해주 쪽으로 가라고 일러주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박동희라는 사람이 찾아온 것은 1942년이 저물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는 사상범으로 몇 차례 옥고를 치른 일이 있어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신문에도 이름이 오르내렸기 때문에 이재영도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약간의 돈을 빌리러 왔소.”

    박동희는 도리우치 모자에 당코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30대 후반이었고 20대의 젊은 청년 둘을 데리고 왔다. 눈빛이 차가운 사내였다.

    “나는 선생과 일면식도 없는데 무슨 일입니까?”

    이재영은 당혹스러웠다. 돈을 빌려 달란다고 마구 내어줄 수는 없었다. 사상범에게 돈을 빌려주면 일본 경찰에 체포될 수도 있었다. 이재영은 사상운동이나 계몽운동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들었을 것이오.”

    박동희의 말투는 위압적이었다.

    “자금도 거의 없습니다. 전쟁 중이라 장사가 안 됩니다.”

    “도와주시오.”

    “곤란합니다.”

    “당신이 빌려주고 싶은 만큼만 빌려주시오. 허나 우리를 도우면 훗날 당신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내 말 알겠소?”

    “군자금입니까?”

    “독립운동자금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런 돈을 빌려주게 되면 나도 체포될 거요.”

    “그럼 우리가 강탈했다고 하시오. 신고를 해도 상관이 없소.”

    박동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재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거절할 수가 없다. 이재영은 비상시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돈을 꺼내주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만족하여 돌아갔다.

    전쟁은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았다. 신문은 일본 황군이 곳곳에서 승리를 하고 있다고 떠들어댔으나 물자 부족이 갈수록 심해졌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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