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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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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87) 제24화 마법의 돌 87

“저녁 먹으러 가요.”

  • 기사입력 : 2019-05-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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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도 아들을 머릿속에 떠올린 참이었다. 도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불러 지리산 청학동에서 한문공부를 하게 했다. 군자암이라는 작은 절이었다. 절을 찾아 여행을 하자니 아들이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아들을 보려는 것이 목적인지도 몰랐다.

    “괜찮겠지.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으니까.”

    “정식이 있는 절에도 한 번 가볼래요?”

    “잘 있는 아이 건드리면 안돼. 학도병으로 끌려가면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대.”

    일본의 전쟁은 조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많은 유학생들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벌써 1년이 되었잖아요?”

    “굳이 가고 싶으면 갑시다.”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정을 말릴 수는 없다. 아버지인 이재영도 때때로 아들을 생각하고는 했다.

    경주에 도착하자 불국사에 올라가 보았다. 첫눈인데도 절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눈이 하얗게 쌓였다. 류순영은 대웅전에서 오랫동안 절을 했다. 이재영은 류순영이 자식들의 무탈을 빌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을 구경하고 시내로 내려와 방을 잡았다.

    “불국사도 대단하지 않네요.”

    “처음인가?”

    “처음이죠.”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던 절의 위용과는 달라 보인 모양이었다.

    여관방은 아늑했다. 경주의 왕릉이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왕릉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가요. 경주에 아바이 순대국이 유명하대요.”

    류순영이 이재영을 데리고 시장으로 갔다. 시장에 순대국을 파는 허름한 식당이 있었다. 함경도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순대국을 시키고 소주도 주문했다. 류순영도 술 두 잔을 마셨다. 맛있는 집으로 유명하여 손님들이 많았다.

    “당신 오늘 밤 나한테 봉사해요.”

    술을 마신 류순영이 뜬금없이 말했다. 순대국은 소문처럼 맛이 좋았다.

    “무슨 소리야?”

    이재영은 어리둥절했다. 류순영의 말에 하체가 묵직해져 왔다.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내가 구경도 시켜주고 술도 사주잖아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허허. 남편한테 안 사주면 누구한테 사줄 거야? 나는 당신한테 안 사주나?”

    “어찌되었건 여자가 봉사하라면 봉사하는 거예요.”

    류순영이 입언저리에 미소를 매달았다.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식사를 하고 여관으로 돌아오는데 류순영이 그의 팔에 매달렸다.

    “남편이 있어서 좋다.”

    류순영이 달아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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