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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 사액서원(賜額書院)- 나라에서 현액을 내려 준 서원

  • 기사입력 : 2019-05-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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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우리의 서원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축하할 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 도산서원(陶山書院) 등이 포함되었다.

    경남 소재의 서원으로는, 함양 (咸陽)의 남계서원(?溪書院)이 들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모신 덕천서원(德川書院)은 왜 들지 못 했을까? 1868년 고종(高宗) 때 훼철(毁撤)되었다가 1918년 다시 지었기 때문이다.

    1443년 풍기(豊基 : 오늘날의 영주시 풍기읍) 군수로 있던 신재 (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웠다. 그 뒤에 부임한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나라의 공인을 받는 사액(賜額)을 요청하니, 임금이 친필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현액(懸額)을 써서 내려주어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고, 이후 우리나라 사액서원의 전형(典型)이 되었다.

    사액(賜額)이란, 서원의 현액을 임금의 명으로 국가에서 내려준다는 뜻이다. ‘액(額)’이란 본래 사람의 ‘이마’란 뜻인데, 건물 중앙에 이름을 알리는 판자도 액이라 한다.

    사액서원이 되면 국가의 공인을 받아 국가로부터 서원 운영에 필요한 전답과 노비를 하사받았다. 또 서적도 하사받는다. 그리고 정식으로 등록된 유생 20명 내외는 병역과 세금을 면제받았다.

    서원의 기본 기능은 존현양사 (尊賢養士)이다. 즉 어진 이를 존숭(尊崇)하여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훌륭한 인물이 태어났거나 관계가 있는 곳에 서원을 세워서 그곳의 젊은 유생들로 하여금 학문적, 도덕적 모범으로 삼게 해서 교육적 효과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당시 관학은 너무 형식화되어 있어, 소속 유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향교에 배치된 선생인 교수(敎授)나 훈도(訓導)들은 말단 관원이라 학문적으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단시일에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다.

    서원 창설을 주도한 신재(愼齋)나 퇴계는 관학으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감하고, 서원을 적극적으로 건립해 나갔던 것이다.

    국가에서도 향촌사회를 교화 (敎化)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때문에, 향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하였다. 유생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어떤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로도 꼭 필요했다.

    서원이 조선말기에 이르면 1000여곳에 이른다. 약한 경제기반에서 너무 많다 보니, 지역민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등 서원의 원래 좋은 기능에서 위반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대원군이 서원 25개만 남기고 다 없애버렸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된 인물이거나, 국가민족에게 큰 공이 있는 인물에 한해서 한 곳의 서원만 인정하였다.

    대단한 개혁인 것 같지만, 동시에 한국의 선비정신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 賜 : 내릴 사. * 額 : 이마·액자 액.

    * 書 : 글 서. * 院 : 집 원.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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