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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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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만촉(蠻觸)- 성선경(시인)

  • 기사입력 : 2019-05-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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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촉(蠻觸)은 하찮은 것을 다툰다는 뜻으로 이 고사는 장자(莊子)의 칙양편(則陽篇)에 나오는 우화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있는 나라가 촉씨(觸氏)이고, 오른쪽에 있는 나라가 만씨(蠻氏)인데, 두 나라는 수시로 땅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죽어 나뒹구는 시체가 수만이 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이 우화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와각쟁투(蝸角爭鬪)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루하루 아등바등하는 게 다 달팽이 뿔싸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왼쪽 뿔에서 오른쪽 뿔로, 오른쪽 뿔에서 왼쪽 뿔로 아등바등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순명편(順命篇)에 나오는 글귀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이어늘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이니라”가 생각납니다. 이미 모든 것은 그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쓸데없는 부생(浮生)이 혼자만 바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소한 말싸움에도 서로 이기려고 아등바등하고, 쓸데없는 시기심에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힘겨루기를 합니다. 이 모두 달팽이 뿔싸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말과 행동은 다 인과가 있어 새로운 다툼의 원인이 되고, 새로운 인과의 씨앗이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달팽이 뿔싸움에 아등바등합니다.

    봉명일창 천하계명(鳳鳴一唱 天下鷄鳴)이라 했는데, 어디 한 소식 큰 깨우침도 없이 하루하루를 거저 달팽이 뿔싸움에 여념이 없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산다는 것이 다 만촉(蠻觸) 같습니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하라 성현들은 말씀하셨는데,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은 못해도 일주일에 조금, 하다못해 한 달에 조금이라도 변화되고 발전된 생활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하는 일이 오직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쌌다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쌌다가 되풀이하는 시간들입니다.

    저는 몇 개의 화분을 가꾸고 있는데 매주 수요일에 모두 물을 줍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물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음 날 물을 주게 되기도 하는데 물 주는 일을 잊어버리고 다음 날로 넘기게 되면 기분이 아주 언짢아집니다. 화분에 물 주는 것 하나도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데 아등바등한 말과 행동은 얼마나 마음을 상하게 할까요?

    삶도 죽음도 구름 같아,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고 합니다. 삶과 죽음 같은 일생의 큰일도 이러한데 우리 일상의 생활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기분의 기미를 가지고 온힘을 다하여 끝장을 보려고만 합니다. 참으로 달팽이 뿔싸움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하는 일이 이렇게 고만고만하여서 가끔 오래전의 군생활이 생각납니다. 군생활이라는 것이 늘 고만고만하여서 그냥 시간을 보내는 일과 같아 오늘은 동쪽 언덕에 참호를 파고 내일은 서쪽 언덕에 파게 합니다. 오늘은 북쪽을 향하여 포대를 설치하고 내일은 남쪽으로 포대를 돌려놓곤 합니다. 참으로 호두알을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에 쥐었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작고 하찮다 해서 다 무의미하거나 쓸데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생을 경영하는 일에서는 좀 더 의미가 있고 푯대가 있는 생각과 행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화분을 가꾸는 일도 의미가 있고, 사소한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만, 인생을 경영하는 일을 두고 보면 좀 더 큰 생각, 좀 더 의미 깊은 일을 가지고 고민을 했으면 합니다. 봉명일창 천하계명(鳳鳴一唱 天下鷄鳴)은 못해도 달팽이 뿔싸움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한 생애가 얼마나 무거운데, 얼마나 깊은데.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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