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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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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99) 제24화 마법의 돌 99

“조선인처럼 살 수 있겠소?”

  • 기사입력 : 2019-06-05 08:32:56
  •   

  • 나츠코에게서 중년여인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상에게 묻고 싶어요. 제가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일본에 아이들이 있지 않소?”

    “언니가 있어요. 아이들도 다 컸고….”

    나츠코가 젖은 눈으로 이재영을 응시했다. 아이들은 언니가 돌봐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재영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가 대구에서 살면 안 될까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이오? 조선에서 살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지 않소?”

    나츠코가 조선에서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돌아가도 즐거움이 없을 것 같아요. 여기서 이상을 의지하면서 살고 싶어요.”

    “나는 결혼을 했소.”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낼게요. 대구 근교에서 조용히….”

    이재영은 할 말이 없었다. 나츠코의 말은 내연의 여자로 살겠다는 뜻이다. 이재영도 나츠코를 일본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다시 만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조선인처럼 살 수 있겠소?”

    “네. 조선말도 잘하니까 걱정 없어요.”

    “나츠코가 대구에서 산다고 해도 자주 만나지 못할 것이오.”

    “상관없어요. 한 달에 한 번… 아니 열흘에 한 번 오시면 돼요.”

    이재영은 나츠코가 안타까웠다. 나츠코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이재영은 다방에서 나와 식당으로 갔다. 나츠코가 예쁘게 웃으면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한 뒤에는 여관에 방을 잡고 나츠코를 쉬게 했다.

    ‘어쩔 수 없다. 나츠코를 보내고 싶지 않다.’

    이재영은 나츠코가 살 집을 달성 쪽에 마련해 주었다. 텃밭이 있는 시골집이었다. 일본이 항복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났다. 일본인 남자와 결혼한 조선인 여자도 있고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조선인 남자도 있었다. 일본인 남자와 결혼한 조선인 여자들은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가려고 했고, 조선인 남자와 결혼한 일본인 여자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 때문에 조선에 남는 일본인 여자들도 꽤 있었다. 그들이 조선에 사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나츠코는 남편 때문에 남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내연의 남자 때문에 조선에 남는 것이다.

    “경성에 가서 짐을 가져와야 하겠어요.”

    나츠코가 말했다. 이재영은 나츠코를 포옹했다. 그녀가 입술을 부딪쳐 왔다. 이재영은 그녀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밖에는 아직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내가 차로 짐을 운반하겠소.”

    “부인이 계시지 않나요?”

    “단양에 갔으니 괜찮소.”

    이재영은 나츠코를 데리고 경성으로 올라갔다.

    글:이수광그림:김문식

    안정은 기자 aje322@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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