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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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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4-어제, 오늘 그리고 청춘] 전통 소목기술로 작업하는 목수 강동석 씨

나무로 시간 다듬었죠 나무가 삶 보듬어줬죠

  • 기사입력 : 2019-06-25 21: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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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에 불을 갖다대면 불붙어 재만 남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동나무는 겉을 불로 그을려야 단단해지고 제 무늬를 예쁘게 드러낸다고 한다. 통영에는 까무잡잡한 오동나무를 닮은 목수가 있다.

    볕 아래 작업으로 그을린 피부와 카키색의 티셔츠 덕분에 더욱 나무같은 사람은 겉모양뿐 아니라 오동나무의 속성도 닮았다.

    채 40이 되지 않은 나이에 몇 번의 그을림을 경험하고, 자연스런 자신의 색과 무늬를 찾게 된 사람.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이자 대한민국 가구명장인 김병수 명장으로부터 전통 목공을 배워 자신만의 스타일로 목공을 하고 있는 강동석(36)씨를 만났다. 그가 직접 지은 집, 아니 직접 만든 거대한 가구 안에서.

    강동석씨가 통영 산양읍 연명예술촌 내에 전통 짜맞춤 방식으로 직접 지은 자신의 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집 내외부 모습. /성승건 기자/
    강동석씨가 통영 산양읍 연명예술촌 내에 전통 짜맞춤 방식으로 직접 지은 자신의 집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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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 강동석 씨의 집 외부 모습.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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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 강동석 씨의 집 내부 모습. /성승건 기자/

    ◆ 그을린 시간= 통영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적성을 살려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순수 회화를 그리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림 그리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인테리어 목수일을 병행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벌려 손 가는 대로 일했고, 웬만한 가구들은 거뜬히 제작해냈다.


    목수 강동석 씨의 집 내부 모습. /성승건 기자/

    불운은 순식간에 몰아닥쳤다. 오토바이 사고를 크게 당해 인테리어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대 후반에 들어설 즈음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

    “저는 참 안 좋은 일들이 많았어요. 뇌수술을 하고 나서 우울증이 생겨 통영 본가로 돌아왔죠. 쉬기도 해야 했고, 사람도 만나기 싫어서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연명예술촌 이야기를 듣게 돼 사람을 피해 숨어들듯 이곳에 들어왔어요.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했고, 다시 나무를 만지게 됐죠. 아프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곳에서 생각지도 못할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작업들을 하려고 그 일들이 찾아왔나 싶기도 해요.”

    ◆ 진짜 소목과의 만남= “저는 진짜가 좋거든요 진짜.”

    목공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예술촌에 들어온 뒤 제대로 된 ‘진짜’ 짜맞춤 가구를 배워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진주에 있는 소목장 이수자 김병수 가구명장. 대패에 쓰이는 날을 가는 것부터 톱질과 끌질, 대패질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책가도에서 흔히 보이는 사방탁자와 선비의 책상인 서안, 어깨 넓은 조선장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고 점차 알고 있던 가구와는 차원이 다른 내구성과 조형미를 실감했다.

    “나무는 환경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피할 수 없어요. 여기에 철로 만든 못이 들어가면, 나무가 수축했다 팽창을 하는 순간 빠져서 망가지게 되는데 짜맞춘 나무는 호흡하듯 수축과 팽창을 함께하기 때문에 이음새가 빠지지 않고 견고해요. 과학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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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수 강동석 씨의 집 내부 모습. /성승건 기자/

    기술에 목말라 찾아간 소목장이지만 만들수록 우리 가구의 정제된 아름다움에도 눈을 떴다.

    “조선장은 질리지가 않아요, 가면 갈수록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불필요한 것은 다 빼서 되레 모더니즘에 가까워요. 장식들이 많은 것도 있는데, 단순장식이 아니라 각자 나무를 잡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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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소목기술로 작업하는 목수 강동석 씨.

    ◆ 홀로 집을 짓다= 진짜 무기들을 익힌 그는 크기를 가리지 않고 나무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만들기로 결심했다. 나무를 가져와 말리고 자르고 잇는 과정에서 오는 시간의 차이일 뿐 다 똑같은 일이라 여겼기 때문. 지난해 1월 1일 그는 불현듯 어디에도 없는 집을 지어야겠다 생각했고 다음날 실행에 옮겼다. 땅을 고르고 주춧돌을 얹은 뒤 통영의 곳곳에 널려 있는 오래된 폐선에서 나온 목재로 혼자 1년간 33㎡ 규모의 복층형 집을 지었다. 물론 그가 전통 소목을 배운 방식대로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춰 기초를 세웠고 폐교 골마루를 뜯어 집안 바닥을 맞췄다.

    “왜 가구를 만들다 집을 지었냐고 하겠지만 제겐 큰 가구나 다름없어요. 오히려 구조는 더 간단합니다. 다만 혼자 지붕에서 2번 떨어졌을 만큼 위험했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죠.”

    7㎏이 빠지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자신의 두 손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실험한 1년은 그에게 희열을 안겼다.

    “제가 살면서 최고로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머릿속에 있던 것이 형상화될 때 즐거움이 상상을 초월해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못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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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석씨가 직접 지은 집 마당에서 보이는 통영 바다./성승건 기자/


    ◆ 내 두 손은 가장 소중하다= 나무를 오랫동안 만지면 도를 닦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어떤 나무든 쓰이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 말려야 하고, 장롱 하나를 제작하는 데도 몇개월이 걸리니 기다림이 익숙해서일지도. 친구같이 곁을 지키던 나무들은 목수를 차분하게 만들었고, 응어리를 풀게 했다.

    꾸준히 나무로 무언가를 만들었지만, 목수를 다듬은 건 나무인 셈. 이제 같은 공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눈과 손에 익은 나무들하고는 교감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고마운 나무들로 하고 싶은 작업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자 목표. 그의 행적들이 전통기술을 배우려는 청춘들에 제안하고 싶은 것을 가리킨다. 그대로 전통기술을 계승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며 전승자들이 필요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전통을 기반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흔하지 않은 길이지만 누군가는 갔어야 하는 길이죠. 전통을 잇는 것도 한계를 정하지 말고 시야를 넓히면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다음 목표는 배다. 바다를 끼고 사는 이의 배포이자, 배를 만드는 사업에 번번이 실패했던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은 마음, 한계를 두지 않는 작업을 이어가는 뜻에서다.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을 이뤄내는 진실한 노동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가 직접 쓴 작업실의 문구가 번뜩 떠오른다. ‘내 두 손은 가장 소중하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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