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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숲으로 평상 옮겨 책 읽기- 변종현(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9-08-08 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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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는 고려말 삼은(三隱)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당대의 큰 선비였던 정몽주·권근 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다.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 세력들이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늙은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선산(善山) 봉계(鳳溪)로 돌아갔다. 우왕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강릉으로 옮긴 뒤 살해되자 삼년상을 치르기도 하였다. 조선 정종 때 이방원의 추천으로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왕은 야은의 절의(節義)를 존중하여 예(禮)를 다하고,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야은은 정몽주에게서 이어받은 학통을 김숙자에게 전하고 이는 다시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 세종은 그를 좌사간대부로 추증하고 절의를 기리는 정문을 세워주었다. 그가 송도(松都)를 방문하여 지은 시조인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에는 그의 고려 왕조에 대한 회고(懷古)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다음 술지(述志, 뜻을 적으며)에는 그의 맑은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臨溪茅屋獨閒居(임계모옥독한거) 시내 옆 띠풀집에 홀로 한가롭게 사니//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달이 밝고 바람 맑아 흥취가 넉넉하네//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 바깥 손님 오지 않고 산새들만 지저귀니//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운 채로 책을 보네

    위 시를 보면 야은은 시내 옆에 띠집을 지어 놓고 집 주변에 대숲을 가꾸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삼봉(三峯) 정도전도 ‘산중(山中)’시에서 ‘대숲을 보호하려 길을 둘러 내었고(護竹開迂徑), 산을 아껴 누를 작게 세웠네(憐山起小樓)’라 읊었다. 삼봉은 대숲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길을 둘러 내었고, 산의 경관을 제대로 보기 위하여 누각을 조그맣게 지었다고 하였다. 야은은 시내 옆에 띠집을 짓고 혼자 한가롭게 살고 있으니, 달이 밝고 바람이 맑아 흥취가 넉넉하다고 하였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산새들만 지저귀고 있으니, 대나무숲으로 평상을 옮겨 누운 채로 책을 보고 있다고 하였다.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는 맑은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그러한 공간에 서 있으면 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가 있다. 퇴계는 독서하는 방법으로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수습한 다음 소리를 내어 읽고 외워라(端坐收心, 出聲讀誦)”고 하였는데, 야은은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을 보고 있다’고 하였다. 요즘 도서관에서는 여름 방학기간 동안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집 가까이 있는 시원한 도서관을 찾아, 북캉스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올여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변종현(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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