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1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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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37) 진주 죽향

찻잔에 담긴 ‘삶의 향’ 음미하다

  • 기사입력 : 2019-09-05 20: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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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다시 진주로 돌아와 첫봄을 만난 곳, 삶의 척박함으로 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거룩한 봄을 잃어버릴 뻔했던 그해 2월 끝자락 어느 날, 죽향에서 만난 청매화 꽃은 내 삶의 긴 잠식을 깨워주는 기적 같은 풍경이었다. 움츠리고 있던 나의 감성은 진통제를 섭취한 것처럼 다시 살아났고, 슬픔은 녹아서 봄물결과 함께 유려하게 흘러주었던 깊은 기억의 그곳 그 사람, 그 차….’ 서양화가 정진혜 작가가 쓴 글의 한 구절이다. 거룩한 봄을 잃어버릴 뻔했던 화가의 긴 잠을 깨워주었던 그곳, 죽향(竹香).

    죽향 입구.
    죽향 입구.

    누군가는 죽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재사(才士)와 기인(奇人)들이 출몰하는 찻집’이라고. 그럴법도 하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같은 테이블에 스님, 춤 명상가, 보건소 직원, 야생화 전문가, 의류 소매업자가 동석해 차를 마시고 시간을 공유하다 제 갈길들을 갔다. 나이와 성별, 관심사와 업이 모두 다른 이들을 잠시 한데 엮었다 풀어놓은 건 죽향이라는 공간과 은은한 차 한 잔. 재사와 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이한 경험이기는 했다.

    죽향은 김형점(54), 김종규(59) 부부가 1997년 8월 대중 찻방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은 청소년수련관이 된 당시 진주시청을 마주한 건물 2층 목좋은 자리에 둥지를 틀다 보니 수많은 진주시민들이 자연스레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다구(茶具)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2층을 확장해 ‘아정(雅亭)’이라는 차 도구 판매 공간도 만들었다.

    다양한 차 도구를 판매하는 공간인 아정(雅亭).
    다양한 차 도구를 판매하는 공간인 아정(雅亭).
    그림 전시, 음악 공연 등 지역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죽향차문화원’.
    그림 전시, 음악 공연 등 지역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죽향차문화원’.
    그림 전시, 음악 공연 등 지역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죽향차문화원’.
    그림 전시, 음악 공연 등 지역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죽향차문화원’.

    2005년부터는 웰빙, 힐링 바람을 타고 차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3층까지 확장해 ‘죽향차문화원’을 열었다. 문화원은 차와 관련된 교육뿐 아니라 고전강독 모임, 불법을 강하는 법석, 그림 전시, 음악공연 등 지역예술인들이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발표의 장으로 두루 활용되기도 한다. 부부는 사이좋게 죽향 사장 직함은 남편 김종규 씨가, 죽향차문화원장 직함은 아내 김형점 씨가 나눠 가지고 있다.

    김형점, 김종규 부부가 진주에서 운영 중인 죽향. 1997년 대중 찻방으로 문을 연 후 2층은 차 도구를 판매하고, 3층은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형점, 김종규 부부가 진주에서 운영 중인 죽향. 1997년 대중 찻방으로 문을 연 후 2층은 차 도구를 판매하고, 3층은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형점·김종규 부부
    김형점·김종규 부부

    죽향으로 오르는 1층 목조계단에서부터 지역민들의 애정어린 발길이 남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벽이면 벽, 창틀이면 창틀, 구석구석 스며있는 정갈하고 아늑한 죽향만의 정취는 20년 넘도록 단 한 번도 찻집 문을 닫지 않은 부부의 지극한 정성에서 비롯됐다. 매일 오전 9시 반에 문을 열어 오후 11시 반에 문을 닫는 일과는 흐트러진 적이 없다. 그 이유를 묻자, “누군가 차를 마시러 올 때 그 간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문 닫힌 찻집을 보고 돌아서야 할 때의 참담함을 알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형점 죽향차문화원장은 죽향을 꾸리기 전 전국 찻집을 순회하며 탐방을 다녔다. 젊은날부터 차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김 원장에게 차는 ‘생명선’이나 다름없었다. “갓 결혼해 갑자기 달라진 생활에 혼란스러울 때에도,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에도, 아이들 키우고 먹고사느라 눈코 뜰 새 없었을 때에도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혼자 찻물을 내려 차를 마시거나 다원에 가서 오롯이 집중해 차와 마주하는 일과를 멈추지 않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 청승맞다 싶기도 하지만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저를 저답게 만들었고, 살게 했어요. 저에게 차는 너무나 신성한 대상이었죠.”

    하지만 찻집을 꾸리겠다는 포부에 찬 젊은 여인에게 돌아오는 말은 ‘굶어죽을 작정이냐’ 였단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다방문화가 만연했죠. 전통찻집이라 하면 어두컴컴한 공간에 나이 드신 분들이 무거운 음악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음침한 분위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았죠.” 김 원장은 죽향을 통해 그 ‘분위기’를 새롭게 덧칠하기로 마음먹었다. 서향으로 창이 드넓게 난 밝은 공간을 차실로 정해 쉽게 볕이 들게 하고, 잡다한 물건을 모두 치운 뒤 선방처럼 깨끗하고 간결하게 꾸몄다. 손님들이 차를 마시는 공간에서는 일체의 다른 음식을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규율도 정해두고 칼같이 지켰고, 최근까지는 가게를 마친 뒤엔 달을 보며 다음날 차 내릴 물을 뜨러 지리산을 오가는 지극정성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20여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죽향을 객사(客舍) 삼아 드나들면서, 차를 대하는 부부의 자세도 서서히 달라졌다. 아니, 성숙해갔다. “사실 젊은 날엔 차를 편안하게 내려놓지 못하고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고 봐야겠죠. 물론 지금도 차는 일종의 수행이자 나를 나답게 만드는 물질, 신성한 음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땅에 두고 발로 뭉개어도 여전히 차는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은 죽향이라는 공간을 더 조화롭고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안목을 열어주었다고 부부는 믿고 있다.

    차 내리는 모습.
    차 내리는 모습.

    죽향은 서부경남지역의 예술인, 정치인, 종교인 등 각계의 지성인들의 발길에 의해 그 향기와 윤기를 더해 간 공간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사람들이 죽향을 ‘사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에는 죽향을 사랑방처럼 여기던 예인과 학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부부는 죽향이 지나온 시간을 확인하게 됐다. “한학자이신 오여 김창호 선생님, 진주시민노인대학장 정구현 선생님, 문인화가 도원 이창호 선생님, 이런 분들이 최근 몇년 사이 세상 떠나셨죠. 죽향을 찾아주셨던 진주의 낭만가객들이 많이 떠나셨다 싶어 쓸쓸하기도 하고 그래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시민사회운동가이자 시인인 박노정 선생의 마지막 출타도 죽향 나들이였다. “박 선생님은 올곧은 신념과 차를 통해서 우주에 닿으신 분이셨죠. 그래서 죽향에 오시면 마음이 좋으셨던 모양이에요. 마지막 떠나시기 전 굉장히 아프실 때, 거의 정신이 없는 중에 죽향을 찾아오셨죠. 그렇게 또 진주의 정신이라 할 만한 분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죠.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될 시간 동안 죽향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레 겪는 성장통이지 싶습니다.”

    음료도 시절을 타기는 마찬가지. 자본력이 동원된 커피사업이 광풍처럼 몰아치면서 10년 정도 왕성했던 차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서도 차츰 거품이 빠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골목마다 늘어선 커피숍이 모두 문을 닫은 시간에도 죽향에는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차나무는 지상으로 뻗은 줄기보다 땅 밑의 뿌리가 깊다는데, 그 여여한 기운은 죽향에도 구석구석 스미는 것이 아닐까. 부부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고민에 대해서도 죽향 주인다운 답을 내렸다.

    “차의 대중화에 대해서 오래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커피처럼 많은 사람들이 차를 쉽게 즐길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요즘 죽향을 찾는 손님들을 보면서 죽향은 죽향대로 지금까지 꾸려온 차문화를 꾸준히 펼쳐나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부가 그러한 답을 내린 결정적인 요인도 각기 다른 삶의 색깔과 무게를 지녔지만 차가 좋아서, 찻방이 주는 아련한 정취가 좋아서 죽향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때보다 취향이 확고한 시대예요. 초등학생 꼬마가 죽향을 알아봐서 엄마아빠를 데리고 차를 마시러 오고, 공사현장에서 땀 뻘뻘 흘린 뒤에 꼭 차를 마시고 퇴근을 하는 인부도 있습니다. 차를 사랑하는 마음, 차를 즐기는 여유는 어떤 계층이나 나이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죽향은 그런 분들의 공간이고, 또 그런 분들에 의해 굴러가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어느 날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죽향을 찾는 누군가를 위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조용히 차를 파는 매다옹(賣茶翁)으로 죽향과 함께 늙어가려 합니다.”

    글= 김유경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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