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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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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강현덕

  • 기사입력 : 2019-09-19 07: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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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의 농담은 처음부터 언짢았다

    새들의 긴 조롱도 갈수록 거북했다

    해 뜬 후 마음의 절반

    저절로 오그라졌다


    모질기도 하여라 후두를 찢은 바람

    시퍼런 핏덩이를 기어이 뽑아냈다

    노래에 묻은 핏자국

    선명한 요절의 예감


    절명의 순간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오전도 겨우 아홉 시 풋감 하나 떨어지고

    신문은 한 젊은 가수의 부음을 전해왔다


    한순간에 절창을 뽑아내던 어제를 뒤로하고, 일순간 입술을 오므린 나팔꽃 침묵이 흐릅니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가을은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은 견고하던 남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젊음의 상징이던 푸른 잎잎에 단풍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감성적으로 빠져드니 말입니다.

    위 시조는 선명한 이미지와 적절한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어 시조를 대하는 이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선물합니다. 화자가 나팔꽃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처연하지만 행간은 ‘노래에 묻은 핏자국’ 만큼이나 뜨겁습니다. ‘햇빛의 농담’, ‘새들의 긴 조롱’, ‘후두를 찢는 바람’, ‘시퍼런 핏덩이’, ‘풋감 하나’ 떨어지는 오전 아홉 시 그 시간은 어느 젊은 가수의 요절을 예감이라도 하듯 천국까지 가닿을 절창을 뽑아 올립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서늘한 메시지 한 장이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부디 당신의 천국에선 조롱거리 없는 경쾌한 나팔꽃으로 만발하기를 기도합니다. - 시조시인 임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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