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거부의 길] (1679) 제24화 마법의 돌 179

“아이들 데리고 들어오시오”

  • 기사입력 : 2019-10-01 08:21:01
  •   

  • 행색이 걸인으로 보였다.

    “죄송합니다. 혹시 찬밥이라도 한 덩어리 얻을 수 있을까요?”

    여자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구걸을 하면서 돌아다닌 것으로 보였다. 전쟁통이었다. 구걸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찬밥이 없소.”

    집에 음식이 없었다.

    “혹시 다른 먹을거리라도…. 아이들이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이재영은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여덟 살과 여섯 살쯤으로 보는 계집아이였고 얼굴이 더러웠다.

    아이들도 굶주려서인지 병색이 있어 보였다. 이재영은 여자가 안쓰러웠다.

    “쌀은 있소. 내가 밥을 할 수는 없고… 부인이 직접 밥을 지어서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소?”

    이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차가운 가을비까지 내리는데 여자와 아이들을 거리에 내보낼 수 없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류순영은 집에 오는 걸인들에게 항상 음식을 내주었다.

    “허락해 주시면 제가 밥을 하겠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들어오시오.”

    이재영은 여자와 아이들을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고맙습니다.”

    여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쌀과 반찬을 조금 사왔는데 저녁을 지어 먹이시오.”

    이재영은 여자에게 쌀과 반찬을 내주었다. 여자가 저녁을 짓는 동안 이재영은 아이들을 씻기고 헌옷을 걸쳐주었다. 여자에게도 허정숙의 옷을 갈아입게 했다. 도둑들이 들어와 대부분의 옷과 살림도구를 훔쳐 갔으나 그래도 헌옷과 밥그릇 따위는 조금 남아 있었다.

    ‘여자가 젊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자 여자는 서른 살도 안 되어 보였다.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결혼을 일찍한 것 같았다.

    “어르신께서는….”

    이내 여자가 저녁을 지었다.

    “나는 저녁을 먹었소. 나에게 신경 쓰지 말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시오. 부인도 식사를 하고….”

    “고맙습니다.”

    여자가 몇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이재영은 여자가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허겁지겁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는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어떻게 할 거요?”

    이재영이 소파에 앉아서 물었다.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밖에 머물 곳이 있소?”

    “빈 집을 찾아보겠습니다. 폭격에 무너진 집에 들어가서….”

    글:이수광그림:김문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