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우리도 꽃길을 걷고 싶다- 이인규(소설가)

  • 기사입력 : 2019-10-03 20:31:57
  •   

  • 태풍이 지나간 뒤로 모든 게 스산하다. 집 앞마당의 대추나무, 감나무, 모과나무의 채 익지 않은 과실은 바람에 여지없이 떨어지고, 그렇지 않아도 지붕 쪽이 너덜너덜했던 비닐하우스는 거덜이 나버렸다. 내가 사는 산골 골짜기도 이럴진대 평지의 일반 농가는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을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나는 그에 따른 파급 효과를 농작물이나 시설에 그치지 않고 비유적으로 사람 사는 세상에 적용해보고 싶어진다.

    지난 뜨거웠던 여름부터 지금까지도 시들 줄 모르는 현 법무부 장관의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에 관하여 여타 간의 논쟁과 진실공방은 이미 언론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에서 많이 다루었으므로 차치하고, 나는 그와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현 정부가 주장하는 검찰개혁에 관하여 내 경험을 작가적 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얼마 전, 산골 작가인 날 위로할 겸 술 한잔하고 싶다고 예전 직장 동료 둘이 찾아왔다. 그들은 검사들의 상징인 ‘상명하복’의 원천이자 폭탄주를 물 마시듯이 하는 ‘군’에 적응하지 못하여 입사 5, 6년 만에 옷을 벗고 나간, 검사와 같은 특정직 공무원(군무원)이었다. ‘부적응’이라니까, 마치 그들 자체에 하자가 있는 것 같이 들리겠지만, 실상 둘은 지방 명문대학을 졸업한 뛰어난 행정실무가요, 당시만 해도 생소한 파워포인트, 엑셀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전산 전문가였다. ‘군’이란 용어를 말했으니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간 이유는 이제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들이 나간 후로, 내 동기생들의 절반이 정년이 한참 남은 직장을 떠났고, 나 역시 그곳에서 겨우겨우 20년을 버티다 그만두었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에 끝까지 남아 있던 나와 절친인 후배는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명하복’과 ‘폭탄주’는 그만큼 무서운 용어이자, 멀쩡한 사람을 옥죄고 조직과 구성원을 비정상적으로 끌어가는 도구이다. ‘군’에서 사용하는 ‘까라면 까라’라는 구태적인 말로 대다수 젊고 유능한 검사들은 여태껏 자신들의 양심과 소신을 저버리고 조직에 충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겨우 군에서 근무해보고 일반 공무원의 생리를 어떻게 잘 이해하겠어, 하고 물을 수 있다. 밝히지만 필자는 젊은 시절, 짧게 법무부 산하 교정직, 부산시 공무원부터 이곳 시골에 들어온 이후 면사무소에서 한시임기제 공무원까지 여러 공직을 거쳤다. 공무원의 생리는 기본적으로 복지부동이자, 조직의 안위가 우선이다. 그래서 기소권과 공소권을 동시에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검찰은 자칫하면 권력과 기득권의 편에 서서 대다수 국민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법무부의 비검찰화와 검찰의 정치적 중립 등의 검찰개혁은 검찰 내부의 강력한 반발과 보수언론, 야당 등의 기득권 카르텔로 실패했다. 이제 이 정부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법무부 감찰 기능 강화로 검찰개혁에 성공한다면, 낙숫물 효과로 요즘 쟁점이 된 여느 기관, 직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도 많이 사라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태풍이 지나갔다. 충격과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독자들이 잘 알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다음 총선 때는 제발 판·검사 출신(대다수인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한 분을 제외한 일부)이 선거에 나오지 말고, 나처럼 시골로 들어와서 소를 키우든지, 아니면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봉사 차원의 무료변론이나 했으면 한다.

    이인규(소설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