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거부의 길] (1684) 제24화 마법의 돌 184

“나하고 피란을 갑시다”

  • 기사입력 : 2019-10-10 07:53:08
  •   

  • 서울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란을 떠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겨울의 피란이었다. 적 치하 3개월 동안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다투어 피란을 떠났다. 눈보라를 헤치고 이고지고 피란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은 뒤숭숭했다.

    “여기 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오. 폭격을 당할 수도 있고….”

    김경숙이 서울에 남아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울은 더욱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폭격을 당하면 죽겠지요. 남편도 없는데 살아서 뭘하겠어요?”

    김경숙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재영은 김경숙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요?”

    김경숙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나하고 피란을 갑시다.”

    “제가 어떻게 어르신과 함께 피란을 가요? 아이들도 있는데….”

    “괜찮소.”

    이재영은 김경숙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김경숙이 갑자기 이재영의 가슴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이재영은 김경숙을 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안자 몸이 더워졌다. 갑자기 아랫도리로 뜨거운 기운이 흘러갔다. 이재영은 그녀의 얼굴을 들고 입술을 포갰다. 그녀는 이재영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재영이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재영은 김경숙과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이재영은 12월20일이 되자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왔다. 김경숙과 아이들까지 데리고 피란을 갔다. 이재영의 아이들은 그가 김경숙과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김경숙이 얌전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부딪치지 않았다. 그녀는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열심히 했다.

    12월이 가고 1월이 되었다. 날씨가 살을 엘 듯이 추웠다. 서울은 1월 4일이 되자 대대적으로 피란을 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피란민들의 대열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차에도 석탄을 싣는 차량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올라탔다. 기차의 지붕에 올라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피란민들을 신문에서 보고 이재영은 일찍 피란을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재영은 대구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서울은 또다시 인민군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처럼 국군과 미군이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미군과 국군이 대대적으로 반격을 했다. 인민군과 중공군은 한강을 넘지 못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중공군 수십만명이 물밀 듯이 서울로 밀려 내려왔다. 미군은 전폭기를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폭격을 감행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산과 들판에 중공군의 시체가 쌓였다.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피아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신문은 매일같이 전쟁 상황을 보도했다. 거창 일대에서는 국민방위군이 학살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피란을 오다가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재영은 서울을 비롯하여 중부전선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이 미친 것 같았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아니었다. 한 나라 한 민족이 서로 죽이고, 중공군까지 몰려와서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내를 이루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