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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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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경남판 이철희’는 없나-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19-10-22 20: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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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국회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역구도 없고, 정치 경륜도 일천한 비례대표·초선의 결단으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가 부끄럽다”는 불출마 변은 한국 정치판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치권을 ‘공동체의 해악’으로 규정했다. 막말과 선동만 있고 숙의와 타협은 사라진 점을 이유로 꼽았다. 대다수가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도 천박하고 상스러운 욕설을 예사롭지 않게 내뱉는 이들이 대한민국 선량이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존경하는 OOO 의원님’이라고 서로 존칭하는 걸 보면 코미디다.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작업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 한데 우리 정치판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철학도 사명감도 없이 오직 당리당략에 따라 태도가 돌변하는 고질병을 안고 있다. 민생을 챙기기는커녕 되레 장애가 되고 갈등만 유발한다. 이철희는 “정치가 해답(solution)을 주기는커녕 문제(problem)가 돼버렸다”고 일갈했다.

    초선 정치인의 좌절은 손가락질받는 정치판의 속살이다.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한다고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게 솔직한 고백”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더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서서 하는 게 옳은 길이라 판단한다”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정치권은 고요하다. 누구도 선뜻 이 무거운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이 좋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너는 가더라도 나는 남아야 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초선 배지를 달면 대부분 3선으로 상임위원장까지는 해야겠다는 ‘꿈’을 품는다. 한 번 맛 들인 권력은 달콤하다. 선거 때만 잠시 유권자 마음을 훔치면 5선이고 10선이고 무제한 누릴 수 있는 농밀한 유혹은 중독성이 강하다. 오직 목적 달성에만 집중한다. 초심은 뒷전이다. 유권자들이 식상함에 지쳐갈 때쯤 3선 이후는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등 ‘큰 정치’에 도전한다며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친다. 물론 다선 ‘감투’가 지역 발전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절대요건은 아니다. 당사자 개인과 가문의 영광에 불과하다는 건 이미 경험한 사실이다.

    경남 정치판을 들여다보자. 아무도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물론 특정인을 지목해 강제할 수 없다. 국민적 지탄을 받아도 지역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다. 한 여당 초선의 불출마설이 있지만, 본인이 공식화한 것은 아니다.

    도내 최다선 의원은 삭발을 하고 보수 지키기 투쟁의 선봉에 섰다. 초선보다 더 독한 결기를 보이며 지역구를 다지고 있다. 또 다른 다선은 보수가 재집권하는데 밀알이 되겠다며 “한 번만 더”를 외친다. 나이와 선수(選數)가 많다고 결격 사유는 아니다. 흠결 있는 초·재선도 없지 않다. 문제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선민의식이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널렸다. 결과론이지만 그동안 선거를 반추하면 정작 남아야 할 사람은 나가고 떠나야 할 사람은 남지 않았나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선수만 쌓고 몸값 못하는 이들이 한둘 아니다.

    내년 어느 화창한 봄날, 누군가는 낙선의 눈물을 쏟을 것이다. 앞서 공천과정에서는 악다구니도 있을 것이다. 그 지경까지 버티다 끌려 내려오는 뒷모습은 추하고 초라하다.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는다(知足不辱)’고 했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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