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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정치꾼이 판쳐서야- 이종훈(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19-10-23 20: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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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가 술집에서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말’이었다. 술 한잔 하다 보면 군사정권을 비판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전두환 비방으로 이어졌는데, 이들이 밤새 쥐도 새도 모르게 정부기관에 끌려 갔다는 풍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가원수 모독죄’라고도 불렸던 ‘국가모독죄’였다. 유신 시절 당시인 1975년 도입됐다. 전두환 정권에서 국가모독죄는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용도로 활용됐는데 민주화 이후 1988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런 ‘말조심 현상’이 또 일어나고 있다. 술자리 안줏감으로 올렸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 등을 둘러싼 정치 이야기가 금기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는데 조국 관련 얘기로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돼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를 둘러싼 ‘광장대결’을 놓고 ‘진정성 공방’이 벌어졌고 의견이 충돌하면서 한 친구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려 모임이 깨져버렸단다. 이후부터 모임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 됐다.

    더 황당한 것은 미리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물어보고 확인한 후에 대화를 시작하는 모임도 있다고 한다.

    지난 추석 때는 가족들끼리 조국 장관을 둘러싸고 말싸움을 벌이다가 집안에서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념과 생각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은 심각한 상황이다. 조국 사태를 두고 열린 서로 다른 성격의 대규모 집회를 보면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진보와 보수 간의 진영싸움이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특정 정파만을 챙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은 두 갈래로 쪼개졌고 통합정치가 실종되면서 친구, 가족들도 분열됐다. 더욱이 정치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편은 선, 자신들을 반대하는 자는 악으로 간주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청산의 대상으로 삼아 제거하거나 보복하는 ‘파시즘적 정치’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들은 진영 논리에 빠진 집권여당에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만 당리당략에 몰두하고 있는 제1야당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동층이 40%를 넘는 이유가 뭔지 정치권은 각성해야 한다. 민주당의 현재 모습이 싫지만 한국당도 지지하기 싫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정치개혁가이자 학자인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는 ‘진정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가 정치가이고 누가 정치꾼인지 제대로 판별해 내년 총선에서는 이런 정치꾼을 심판해야 한다. 눈앞의 선거를 위해 선동하고 편을 가르는 ‘후진적 정치’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 민심은 무능한 정부와 정치인을 언제든지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종훈(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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