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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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박봉환(카피라이터)

  • 기사입력 : 2019-11-07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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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지 말게 아들. 화장실 옆 칸막이 휴게실에서 밥을 먹는 기간제노동자 애비 모습에…. 울지 말게 아들. 나는 괜찮네. 진짜로. 진짜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네. 물론 나도 애비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니 어찌 편하고 안락한 근무조건을 바라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들, 그대 혹시 아는가?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 인구는 748만1000명이나 되며, 이들 비정규직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10명 중 7명 정도는 ‘평균 근속기간이 1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전년도에 비해 13.1%나 늘었고, 이들 중 특히 최대 50만명에 이르는 기간제노동자는 그동안 정부가 실시하는 경제활동 인구조사에서 아예 빠져있었다는 것을. 그대 혹시 아는가?

    그러니 울지 말게 아들. 비정규직 이 애비의 모습에 절대로 울지 말게 아들. 어찌 보면 사실, 오늘 애비의 이 모습은 지난날 이 애비가 스스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네. 지난날 한 때, ‘IMF’라는 느닷없는 괴물에게 온 나라가 유린당한 후, 애비 세대들은 부랴부랴 ‘한시적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 ‘시간제 근로자’와 같은 듣도 보도 못한 기형적 제도들을 만들고 또 만들었었다네.

    ‘더 많은 고용창출’ ‘더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미명 아래에서 말이네. 두려웠다네. 당시에는 그냥 두려웠다네. 이 애비는 무식해서. 내 아들, 내 자식 세대에게 일자리 없는 세상을 물려줄까 두렵고 두려워서. 그냥 덜컥 그 모든 제도들을 받아들이고 말았다네.

    그러니 아들, 울지 말고 차라리 이 애비를 욕해주게. 그리고 이것만은 꼭 기억해 주게.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이 세상 이 땅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그런 구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곳이 비록 직원 두세 명의 아주 작은 기업이든, 수천 명 직원의 거대 재벌기업이든. 입사하면 그냥 직원- 요새말로 모두, 바로 ‘정규직’이었다는 것을. 신입도 정규직, 차장도 정규직, 부장도 정규직. 경비나 수위를 하는 분도 정규직, 청소를 하는 분도 정규직, 운전을 하는 분도 정규직…. 모두가 다 한 ‘가족’이며 ‘직원’이었고 ‘사원’이었다는 것을.

    박봉환(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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