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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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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누가 변해야 하는가?- 이승석(범숙학교장)

  • 기사입력 : 2019-11-24 2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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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6월 미국 뉴욕 브롱크스(Bronx)에서는 조너선 레빈이라는 청년 영어교사가 자신의 제자에게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뉴욕 주요 일간지에 실렸다. 브롱크스는 할렘가였고 열악한 환경으로 고등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라 살인사건은 주목받지 않았다. 죽은 교사는 세계적 미디어 재벌인 타임워너 회장 아들이었다. 불우 청소년을 위해 그곳에 교사로 가서 자신의 삶을 헌신적으로 내어놓고 청소년들에게 성찰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버지의 돈은 내 돈이 아니며 미래는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며 자신의 월급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제자들을 위해 살았던 아들. 재벌 아버지는 그 고교에 장학기금을 마련해 주었다. 위기의 청소년들에게 나눔과 세상의 밝은 면을 보여주려 했던 한 청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모습은 감동이 되었다. 한 사람의 이런 삶의 자세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미래 발전의 방향성과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노블레스는 ‘고귀한 신분(귀족)’이란 뜻이고, 오블리주는 동사로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중세 귀족들은 신분에 따르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상응하는 도덕적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시대가 변해 귀족이라는 사회적 신분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졌다. 오늘날에는 사회지도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부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갖고 있는 지도층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용어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실천한 사례들이 있다. 경주 최부자다. 최부자 집안은 3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했다. 많은 선행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역할을 통해 부자로서는 드물게 존경과 칭송을 받았다. 권력을 멀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다.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검소하게 살며 자선을 베풀었다. 그러면서도 항일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긴 부의 세습을 마무리했다. 또한 독립운동의 선구자였던 왕산 허위의 집안은 대대로 이름 높은 학자 집안이었다. 그는 고위관직을 버리고 의병을 일으켜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등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했다. 기득권층이 아님에도 전 재산을 기부해 제주도민을 살려낸 김만덕, 평생 모은 돈을 사회에 쾌척한 아름다운 소녀,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대학가 김밥 할머니 등도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의 나눔은 어떠한가. 개인기부보다 기업기부가 많고 기업기부도 세금감면 성격의 비자발적 기부라는 지적이 많다. 연말연시나 재난이 발생할 때에 무언의 기부 압력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부하는 기업들도 사회공헌의 일환이라기보다는 면피나 보신을 위한 방책쯤으로 여겨, 기부보다는 홍보활동에 더 신경을 써왔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의 기부는 대부분 기업 자금으로 이뤄지고 있다. 빌 게이츠처럼 개인 재산을 자선사업에 쾌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사회의 개인기부는 여전히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고 일회성 기부에 그치고 있다. ‘사람 중심 함께 하는 공정 사회’는 대단한 구조 변혁이나 성장 등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소외된 이웃들과 조금씩 나눌 줄 아는, 작은 의식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시도를 내가 먼저 할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올바른 삶의 방향성이 제시된다. 청소년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 온도가 1도씩 올라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2019 마무리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승석(범숙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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