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동고성농협 농기계수리센터 김판규 기능과장대리

“뚝딱뚝딱 ‘농기계 맥가이버’ 언제 어디든 달려갑니다”
고향 떠나기 싫어 택했던 고성농고서
농기계 처음 접한 후 40년간 ‘외길’ 걸어

  • 기사입력 : 2019-12-05 21:09:11
  •   
  • “지역 어르신들은 종종 자식보다 저를 더 반기세요. 그만큼 농기계가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어르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걸 해결해주는 존재로서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 보람으로 오늘도 농기계를 수리합니다.”

    기계가 재미있어 농기계 수리를 시작했던 소년은 중년이 된 지금까지 약 40년을 농기계와 함께했다. 이제는 농기계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났는지 알아맞힐 정도가 됐고, 종종 지역 농민들에게 ‘농기계 맥가이버’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인정받는 베테랑 농기계 수리기사지만 그는 요령을 피우는 법 없이 오히려 더 열심이다.

    김판규 기능과장대리가 수리 중인 트랙터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판규 기능과장대리가 수리 중인 트랙터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퇴근은 농민들이 손 씻고 귀가할 때죠”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의 동고성농협 농기계수리센터를 지키는 김판규(54) 기능과장대리는 “요즘 농사는 다 기계가 있어야 하잖아요. 기계가 멈춰서면 당장 어르신들 생업에 지장이 생기는데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있어야죠”라며 당연한 듯 답한다.

    그는 실제 ‘24시간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사무실 전화 착신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돌려놓고, 사무실 문을 열지 않는 시간에도 항시 전화를 받는다. 앞서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여러 차례 사무실로 전화를 했을 때도 여지없이 그가 전화를 받은 터였다.

    “농기계는 농민들 생명줄이에요. 그게 멈춰섰는데 농민들 속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연락이 안 되면 더 그렇겠죠. 그래서 하루 언제라도 전화를 받아요. 제 출근은 농민들이 눈떴을 때, 퇴근은 농민들이 손 씻고 귀가할 때라고 할까요.”

    그는 하루 20~30번 출장은 예사라는 농번기뿐 아니라 평소에도 대형 농기계가 들어오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할 정도로 바쁘다. 애타게 기다릴 농민들을 위해서는 허투루 쓸 시간이 없다.

    지난 2일 동고성농협 농기계수리센터를 찾았을 때 역시 그는 동료와 함께 트랙터를 수리 중이었다. 연신 미소 지으며 기름때 묻은 손으로 하얀 명함을 내밀던 그에게 인터뷰 시간으로 최소 1시간은 걸릴 것 같다는 말을 건넸을 때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도 아마 그 이유였으리라.

    시중 수리센터에 비해 절반 남짓한 가격으로 수리서비스를 제공하는 농협 농기계수리센터이다 보니 농번기는 물론이고, 일 없는 날이 잘 없어 지칠 법도 한데 농기계와 관련해서는 항상 활기찬 그다. 농기계 수리할 땐 배도 안 고프단다.

    ◇‘재미’로 시작해 ‘사명’이 된 농기계

    농기계를 중심으로 하루가 돌아가는 것 같은 그가 농기계에 발을 들인 건 우연이었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 택했던 고성농고에서 농기계를 접한 게 시작이었다.

    고성에 트랙터가 고작 2~3대 정도 있을까 싶던, 농업의 기계화가 한참 시작될 무렵에 그는 ‘기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접한 농기계 운전 등 실습은 그를 확 끌어당겼다.

    군 제대 후엔 본격적으로 농기계 대리점에서 농기계 수리를 시작했고 이후에는 개인 수리센터를 차리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의 동고성농협에 발을 들인 게 31~32세 무렵이었다. 당시 회화농협이 영오, 개천, 미암, 구만, 회화 지역을 통합해 지금의 동고성농협으로 새출발하면서 구축하는 농기계수리센터의 인력을 구하던 때였다.

    “좋아하는 일로 수리센터를 열었는데 아침에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너무 여유가 없는 거에요. 개인 사업장이니까 가족들도 가게를 거들어야 할 일이 많고요. 이래선 힘들겠다 싶었고 마침 농협에서 사람을 뽑는다기에 지원했죠.”

    앞서 회화농협 시절, 소속 농기계수리센터에서 그에게 협력을 수차례 구하면서 농협에서도 이미 그의 능력을 알고 있던 참이었다. 개인 사업장의 미래가 불투명할 것 같기도 했거니와 농협에 들어가면 농기계 관련 교육도 받을 수 있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선택은 자신에게 옳았다. “기술이라는 건 한계가 없어요. 매번 배우고 그걸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김판규 기능과장대리.
    김판규 기능과장대리.

    ◇“아쉬움 남길 수 있게 더 열심히”

    개인 사업장을 떠나 농협 소속이 되면서 그는 마음 편하게(?) 봉사 중이다. 간혹 개인사업장에서는 공임이나 부품값을 부풀려 농민들에게 덤터기를 씌우지만 그가 속한 수리센터는 정찰제다.

    고객이 개인 센터에서 부품 교체를 요청받았다면 다시 한 번 살펴 웬만하면 교체 없이 수리로 끝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한 손님은 이앙기가 고장나 모 수리센터에서 400만원 견적을 받았다가 혹시나 싶어 찾은 그에게 1만원으로 수리를 마친 적도 있다.

    “농기계가 수천만원씩 해요. 비싸면 억 가까이 가는데 농민들이 그걸 다 빚내서 산단 말이에요. 근데 그거 고장났다고 또 큰돈 나가면 안 되잖아요. 최대한 저렴하게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농기계 구매에도 그의 조언이 빠지지 않는다. 굳이 필요없는데 비싼 걸 사지는 않는지, 고장이 잘 나는 모델을 고르지는 않았는지 등을 살핀다. 누구보다 농민들의 입장에서 다가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만사에 그를 부르는 일도 예사다.

    “한 분은 손을 다쳤는데 저한테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문제가 생기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저였다고요.”

    다른 지역에서 찾는 고객들도 있다. “고성읍이 저희 관할이 아닌데 한 분이 예초기를 갖고 오셨어요. 자기 동네에 맡겼더니 해결이 안 된다고 저희 센터에 가보라고 했대요.”

    그를 움직이는 힘은 ‘고맙다’, ‘자네가 최고야’ 등 농민들의 진심어린 감사 인사다. 이렇다 보니 그의 목표는 은퇴 후에도 이웃들에게 자신의 손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근처의 이웃부터 사회복지시설까지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생각이다. 그 전에 후배에게도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기술들을 열심히 전수하는 것도 목표다.

    “만사에 저를 찾으시듯이 계속해서 필요한 사람이고 싶어요. 아쉬움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우선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현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