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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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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계란찜- 전형수(전 경남도 법무담당관)

  • 기사입력 : 2020-01-09 20: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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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득 어릴 적 추억 한 토막이 생경스레 찾아온다. 요즘 아이들은 안 먹어서 애가 타고 흔한 것이 계란찜, 삶은계란이겠지만 우리 어릴 적엔 귀하디 귀한 것이 계란이 아니었던가. 하루는 어머니께서 부엌에서 뒷간으로 들락거리시며 분주하셨다. 된장독, 간장·고추장 단지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시더니 끝내 계란 두세 개를 만지작거리다 통 크게 툭툭 깨뜨려 양은냄비에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밥솥에 넣고 찐다. 군침이 넘어가는 노란 계란찜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상반이 넘는 밥상에 함께 올린다.

    우리 식구끼리 먹는 날은 꽁보리밥 아니면 갱죽에다 소금 한 줌 퍽 집어넣고 대충 무친 나물 한 가지면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라 맛이 없을까 걱정할 일 아니었고 그저 부족할까만 걱정일 뿐, 맛이네 영양이네 하는 지청구는 사치였는데 이날따라 성찬이 준비된 것은 고모부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 집 기준으로 귀빈이 오셨으니 있는 것은 다 내놓고 성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고모부께서 저 맛있는 음식을 다 드시면 어쩌나 내 걱정은 거기에 꽂혔다.

    곁눈질을 하면서 밥숟가락을 놓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모부는 체면치레로 서너 숟갈 밥과 계란찜 약간을 남기시며 일부러 배부른 척 헛트림을 하시고는 상을 물리셨다. 호시탐탐 이때만을 노리고 있던 나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여간 거친 음식도 없어 못 먹는 판에 어디 계란찜은 씹을 것도 없었다. 혀 한 번 돌리니 목구멍 한 고개 넘어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고모부께서 다녀가신 뒤였다. 식탐 한 번 한 것이 버릇없는 행동으로 뒷감당이 안 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던 나를 비뚤어질까 염려해 엄하셨던 어머니의 훈육 차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호된 꾸지람과 함께, 빗자루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나니 득실이 무엇인지 남는 장사가 아니었네 싶어 씁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형편이라면 그까짓 계란찜이 뭐라고.

    전형수(전 경남도 법무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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