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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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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견인되다- 권성훈

  • 기사입력 : 2020-02-27 08: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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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 만개한 어느 봄날

    딱지 한 장에

    맥없이 끌려가는 시동 꺼진 차를 본 적이 있는가

    상여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국화 꽃잎처럼

    육체의 무게로 부가된 호적을 통째로 바꿔버린

    견인안내문만 달랑 남아 있다

    불법주차 중인 오늘

    예고 없이 도난당하는 나의 길도

    봄밤에 없는 속도로 견인되고 있으리


    ☞불법주차 중이던 차량이 견인되는 상황. 도리 없이 끌려가는 차를 보면서 벚꽃 만개한 꽃길을 가던 내가 예고 없이 끌려가는 상상을 한다. 끌려가는 속도도 인지하지 못한 채 생의 종착역으로 하염없이 가는 오늘, 꽃은 흐드러져 아름다운데 누가 끊어놓고 갔는지도 모르는 딱지 한 장으로 삶의 속도는 멈추게 되리라. ‘이곳에 있던 자는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습니다’는 견인안내문이 아름다운 봄밤과 눈부신 꽃잎 사이에서 대조적으로 더욱 그 서글픔을 배가시킨다. 상여 지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하얀 국화꽃잎처럼 차마 그리운 사람들 남겨놓고 오늘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찾아오리라. 복수초가 피고 매화가 피고 머잖아 벚꽃 필 터인데 어디로 견인되고 있을까 우리는.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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