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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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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5월의 아버지- 옥은숙(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0-05-19 2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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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은숙 경남도의원

    아버지는 가을에 떠나셨지만, 5월에 가장 그립다. 5월에 가족의 행복에 관한 기념일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미처 녹음이 되지 못한 신록과 붉은 영산홍 꽃에는 원래 그런 그리움이 배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길지 않은 생을 마치고, 평생을 보낸 집과 멀지 않은 시립추모공원에서 영면하고 계신다. 묘비의 옆면에는 아버지의 생몰연대가 새겨져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벌써 내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있네”라고 슬픈 농담을 한다.

    아버지는 치열하게 사시다 환갑이 되기 전에 집 앞의 국도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날도 온 힘을 다해 하루치의 노동일을 하셨는데, 피곤함에 지쳐서 드신 약주의 취기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지셨으리라. 아버지는 강직하고 근면했으며,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정직한 소시민이었다. 평생의 소원이던 자신의 작은 집을 지으려는 가난한 이웃들은 정직한 옥 목수인 아버지에게 일을 맡기곤 했다.

    당대의 여느 아버지처럼 가정사에는 무심하고 이웃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셨기에, 네 자녀의 맏이인 나는 늘 불만이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삶의 방식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땅에 묻던 날에 우리 네 자녀는 발을 구르고 땅을 치며 울었지만, 이제는 산소를 찾아갈 때도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묵은 슬픔은 새로운 슬픔에 밀리고 눌러져서 화석처럼 깊은 곳에 쌓이는지 모르겠다. 친척들은 내가 자식 중에서 가장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한다. 어떠한 낯선 일이라도 물 불 가리지 않고 겁 없이 덤비는 성격이나, 식음을 미루고 일의 마무리에 몰입하는 태도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똑 닮았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성장한다고 한다. 내 발자국과 내가 걸어왔던 길을 내 자식과 손주들이 쳐다보고 있을 것인데, 내가 따라 걷던 아버지의 발자국처럼 곧고 바르게 걷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본다. 5월에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5월에는 아버지의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옥은숙(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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