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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계영배(戒盈杯)- 유승규(창원신월고 전 교장)

  • 기사입력 : 2020-05-25 20: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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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규 창원신월고 전 교장

    허리 염좌. 지나친 운동에 나쁜 자세가 얹혀 신중년 시작 두 달 만에 받아든 달갑지 않은 건강 성적표다. 한 달간 통원 치료와 당분간 천천히 걷는 정도의 가벼운 운동도 하루 30분 이상 하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다. 이제 운동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막연한 불안감이 빈자리를 꿰찼다. 신중년 첫 출발은 의욕에 넘쳤으나 몇 발자국 만에 구름에 가렸다가 살짝 얼굴을 내민 달에 비친 그림자처럼 흐릿해졌다.

    처음에는 직장인처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평소 하고 싶었던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어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날개를 달아준 운동이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지나친 여유와 자유는 ‘나’를 놓쳤다. 신체 나이를 놓쳤다. 지난 두 달 동안 일정표를 보니 빈틈이 없었다. 너무 빡빡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운동의 극지화’로, 마치 극지에서 나침반은 간간히 북쪽만 가리켜 방향 감각을 잃게 하듯이, 나도 한쪽으로 치우쳐 ‘너무’에만 집착하여 균형 감각을 잃고 ‘너무’ 혹사했다. 거기에다가 어설픈 스트레칭이 더 궁지로 몰아넣었다. 스트레칭과 같은 운동에서 자세는 매우 중요하므로, 나쁜 자세로 운동하는 것은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놓쳤다.

    퇴임자 핏속에는 과욕에 대한 숙연이 깃들여 있다. 그동안 짓눌렸던 과욕이 스멀스멀 온몸을 감싼다. 꿈틀거리는 과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징그럽게 달라붙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는 과욕이 항상 사달을 일으킨다.

    최인호의 ‘상도’에 나오는 ‘계영배(戒盈杯, 넘침을 경계하는 잔)’가 나를 멈추게 한다. 조선 최대 거상 임상옥은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한 것은 계영배라고 술회한 잔으로, 가득 채우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지만, 약 70% 정도만 채우면 그대로 남아 있는 잔이다.

    매일 아침, 욕망의 절제를 통해 조선 최고의 거상에 올라 상도(商道)를 제시한 임상옥의 기본 철학이 가장 잘 녹아 있는 ‘계영배’를 머릿속에 그린다. 오늘도 내 가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욕심 찌꺼기를 뭉갠다.

    유승규(창원신월고 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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